우리것을 찾아가며
1. 욕심.
그가 욕심이 없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함에 굳이 두 말 할 나위가 없는 일 임에도 두 말을 해보는 건 무엇인가.
그건 아마도 피는 못 속인다는 말마따나 시계차면 반지끼고 싶어지는 법이라며
시계와 반지를 끼지 않았던 그의 아버님을 보아내며 자라온 탓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넘은 차암 욕심 많은 넘이라고 어긋장을 부려보는 건 뭣인가.
부러움을 떠나 시세움 그득한 눈초리로 번득거리는 그의 눈.
그런 그의 눈을 거저 하루 이틀 보아왔담 암시랑도 않타 헐것마는 아니었음은 무엇이랴.
인간에겐 누구날 막론하고 오욕과 칠정이 있다했기에 내겐 그의 눈초리를 탓할 바 암것도 없다.
허나 행위가 뒤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 듯, 말과 행동이 들어맞지 않는 담,
지 아무리 욕심없단 말을 늘어놓는다 해도 당최 신뢰가 가겄던가.
하여 물었겄다. 그댄 말관 달리 뭘 글케두 갖고 싶은 욕구로 눈초릴 번뜩이냐고..
거넘 대답이 그럴싸 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데 있어 행복의 3대 조건이란 게 뭬것소.
좋은 집과 좋은 차에 존 직장. 그것만이 오늘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 불가결한 행복의 3대 조건임을 알지만,
난 이미 그러한 욕구에선 초월했노라던 그의 항변에 이어지던 답변.
이러저러한 악기들을 능란하게 다루는 것이라던지 그림을 잘 그린다든지 노래를 잘 한다던지
그런 이 들을 봄 월매나 부럽고 시새웁더냐며,
그러한고로 그대가 보아낸 눈초린 쫌도 틀린 바 없을 것이라며,
게중에서도 춘천교대에서 보았던 풍물동아리 패들의 얼쑤절쑤 장단은
가슴을 먹먹하게 했었다며, 어깨론 신명이 나고 가슴으론 시새움이 탓노라며,
그때 나두야 함 해보고 싶은 꿈을 키웠다는 말을 할제 그의 눈이 탔었다.
하여 이참에 국악연수 길에 오른 그를 따라나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