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레일을 따라가다 만난 간이역
전국에 간이역은 몇 개나 있을까? 그 수를 헤아려보면 500여 개에 달한다. 번성하던 철도가 서서히 쇠퇴의 길을 걸으면서 간이역도 늘어나고 있다. 경전선, 중앙선, 동해남부선을 따라 찾아간 간이역 열 곳.
경춘선, 장항선, 태백선, 호남선. 그 얼마나 고즈넉한 낱말인가! 먼 저편의 기억이 스멀거리며 올라오는 듯하다. 애틋한 추억이 있거나 혹은 없더라도 관계없이.
비둘기호가 사라진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통일호가 없어진 것은 모르는 사람이 많을지 모르겠다. 추억이 서렸던 기차의 기름칠 반지르르한 레일은 사라져간다. 북적이던 플랫폼에서는 인적을 찾기 힘들고 산 속 마을의 간이역은 역사(驛舍)마저 허물어버리는 일이 많아졌다. 황량한 간이역이 늘어난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 마음 둘 곳 역시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전라도와 경상도를 넘나드는 경전선
섬진강 철교를 중심으로 이쪽은 경상도, 저쪽은 전라도가 된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지방의 사람과 물건이 몇십 년을 오갔다. 그간 개발이 더뎌서 옛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경전선. 레일의 곡선미가 단연 최고다. 마을 구석구석까지 철길이 들어가 있기 때문. 막상 도착한 경전선의 모습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이미 리모델링을 마친 번듯한 새 역과 사람의 발길이 뜸한 오래된 헌 역으로.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의미를 가졌던 경전선의 다양한 모습을 담았다.
반성역 5일장이 서는 곳 상·하행 열차가 19개나 있는 반성역은 간이역이라고 하기엔 규모가 크다. 경전선뿐 아니라 경부선까지 취급하는 반성역은 하루 150여 명의 승객으로 북적인다. 끝자리가 3일과 8일이 되면 주변 5개 면을 아우르는 장이 서는 곳이라 역의 규모도 큰 편. 역무원이 배치되어 있지 않은 바로 전 역, 평촌역까지 관리한다. 그래서인지 시골의 간이역이라도 반성역은 활기에 넘친다.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도 많고 간간이 표를 사러 오는 사람도 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과자를 먹으며 재잘거리는 모습이 역에 생기를 더한다. 작은 대합실이 북적거리는 모습이 이제야 사람 사는 곳에 닿은 것 같다. 상행 10회 / 하행 9회 055-754-6788
다솔사역 아련한 간이역 풍경 다솔사역이야말로 사람들의 상상 속에 아련하게 남아 있는 간이역의 모습이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조그만 간이 역사와 멀찍이 떨어져 있는 소나무 한 그루. 오솔길을 따라 마을 깊숙한 곳에 있는 역은 찾기도 쉽지 않다. 연신 마을 사람에게 물어물어 찾아간 곳. 쭉 뻗은 레일 너머로는 다른 세상이 있을 것만 같다. 상·하행 세 차례씩 여섯 번의 정차 열차가 있지만 타고 내리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의문이다. 역 근처에 있는 다솔사를 찾아가기에는 좋은 위치. 우리 마음속의 간이역 풍경이란 이런 것이지 않을까. 상행 3회 / 하행 3회
북천역 친절한 역장이 안내하는 깔끔한 역 북천역은 깔끔하게 단장한 모습이다. 아담한 역사, 레일 옆으로는 꽃도 가지런히 심겨 있다. 북천역에 들어오는 사람이면 누구나 친절하게 반겨주는 역장님이 친근감을 더한다. 북천역은 지금 공사가 한창이다. 그런 면에서 북천역은 ‘전도유망’한 역임에 틀림없다. 있던 역사도 허물어버리는 이때에 신축 공사 중인 것을 보면 말이다. 상행 4회 / 하행 4회 055-883-7788
진상역 아무도 찾지 않는 간이역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넘어와 닿은 진상역, 이것저것 볼거리, 생각할 거리가 많아 두 시간이 넘게 역에 머물렀는데도 사람 한 명 구경하기 힘들다. 역으로 들어오는 사람도 나가는 사람도 없다. 손으로 잡아당겨 레일의 방향을 바꿨다던 기계가 레일의 교차점 옆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열차가 다니는 반질반질한 레일, 그 옆에 대조적으로 벌겋게 녹이 슨 레일에는 잡초가 무성하다. 덕분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기차 레일 위를 마음껏 걸어다닐 수 있다. 통근열차를 합쳐 두어 시간에 한 차례씩 상·하행 총 열 차례 열차가 정차하지만 역사 안 벤치에 먼지가 쌓여 있는 걸 보면 사람이 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역무원도 승객도 없는 간이역은 해 질 녘이 되자 더욱 쓸쓸함을 풍겼다. 상행 5회 / 하행 5회
털털거리는 기차 안, ‘밤마론’은 영원하리~
‘밤마론’. 역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기차 내 간식. 밤에 양념을 곁들인 달착지근한 맛이 여행자의 심심한 입을 만족시키곤 했다. 조금 비싼 것이 흠이지만 지금도 기차에서 팔고 있는 장수 식품인 걸 보면 그 맛에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주머니를 열게 하는 매력이 있다.
30년을 넘긴 천안 호두과자의 위력도 대단하다. 가격은 차츰 올랐지만 인기 메뉴인 것만은 확실하다. 또 오징어땅콩과 전기구이 오징어 역시 빠지면 서운한 음식. 여전히 주황색 그물망에 담겨 판매되는 귤은 겨울철 간식의 필수 품목이다. “시원한 맥주와 오징어땅콩 있어요~”라고 외치던 홍익회 아저씨는 이제 아무 말 없이 돈을 받고 간식을 건네기 바쁘다. 기차는 달라져도 기차 안 먹을거리는 변함이 없다. |
남북을 가로지르는 중앙선
청량리에서 경주까지, 경기도를 거쳐 강원도와 경상도까지 남북을 관통하는 가장 긴 철도 중앙선. 태백산맥의 서쪽 산간 지방과 접해 있어 길이 험하긴 하지만 눈이라도 내릴라치면 그 풍경이 장관이다. 안동 이남으로 내려오다 보면 산에서 평야로 지대가 바뀌면서 탁 트인 시원함도 느낄 수 있다. 여객 열차보다는 화물 열차가 많아 이용객은 많지 않은 편. 역무원도 3조 2교대 방식으로 두 명씩 조를 짜 주 ·야간으로 근무한다.
문수역 시골마을의 한적한 풍경 문수역은 사람보다는 화물을 실어 나르기 위한 간이역. 알루미늄을 실어 나르는 화물열차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또 가끔은 마을 할머니들이 영주에 가기 위해 기본 요금 600원을 내고 통근 기차에 오른다. 한 달에 두서너 번 이 기차를 이용하는 마을 어른을 다 합쳐도 스무 명 남짓. 최병탁 철도 운용원(57)은 옛 역사의 모습을 떠올린다. 손으로 잡아당겨 선로를 바꾸던 1970년대의 수동식에서 전자동 시스템으로 교체되면서 열여섯 명까지 있던 직원이 여섯 명으로 줄었다. 일하는 것은 편해졌지만 정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열차가 역에 멈추는 시간은 단 1분, 조금이라도 열차 시간에 늦으면 그나마 놓쳐버리고 만다. 상·하행 네 차례 열차가 선다고 했으니 문수역에 열차가 들어와 있는 시간은 하루 종일 5분이 채 되지 않는다. 상행 2회 / 하행 2회 054-637-7788
반곡역 치악산 자락의 외딴 곳 반곡역으로 가는 길은 오랜만에 고향집을 찾아가는 사람의 푸근한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차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시골길은 포장된 것만으로도 용하다. 이정표 하나 없는 길을 물어물어야 겨우 찾아갈 수 있는 곳. 맹하다고 하여 ‘맹순이’가 된, 주워다 기른 반곡역의 강아지는 겁도 많다. 모르는 사람이 옆에 있기라도 하면 저를 귀여워해주는 줄도 모르고 숨기에 바쁘다. 누군가 버리고 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개를 역무원들이 거두어 보살핀 것이다. 간이역에 사는 개 맹순이는 영악하지 않아서 좋다. 치악산 자락에 위치한 반곡역은 1941년에 문을 열어 1993년에 이르러서는 표도 팔지 않는 역이 되었다. 반곡역에서 열차를 이용하는 손님은 한 달을 합쳐도 열 명이 넘지 않는다. 그러니 승객이라고는 하루에 한 명도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역사가 보존문화재로 등록되어 허물 일은 없어 다행이지만 역무원이나 역이나 조금쯤 심심해 보인다. 반곡역은 그 풍경이 워낙 고즈넉하고 조용해서 드라마나 TV 프로그램에도 종종 등장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러한 이력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반곡역의 아름다운 풍광이 지나가던 여행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상행 2회 / 하행 2회 033-747-1188
평은역 화물열차가 불어넣는 활기 어느 간이역이나 마찬가지지만 평은역을 찾기란 좀처럼 쉽지 않은 일. 채석을 위해 깎인 산을 뒤로하고 나지막이 자리한 평은역은 고요한 간이역의 느낌은 아니다. 잿빛의 화물선이 황량하게 깎인 산 옆을 가로지른다. 산을 울리는 화물열차의 진동 소리는 입하를 위해 하루 두세 번 이루어지는 역의 일과. 철도 운용원을 빼면 사람 한 명 찾아보기 힘들다. 시멘트 공장과 채석강이 주는 거친 이미지의 역이지만 화물 수송에는 중요한 지점이다. 평은역의 화장실이 아직 재래식이라는 것도 재미있다. 수몰 우려가 있었던지라 철도청에서 그간 역사에 투자하지 않은 탓이다. 그래서 오히려 정감이 간다. 평은역 역시 한 달에 20~30명의 승객만이 기차를 타고 내린다. 작년에 사라진 13시간짜리 청량리발 부전행 통일호가 있었던 역이었지만 그나마도 사라져버렸다. 상행 2회 / 하행 2회 054-637-4181
<선데이 서울>의 촌스러움을 추억하며
198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주간지 <선데이 서울>을 기억하는가? 기차여행의 무료한 시간을 달래주던 고마운 녀석. <선데이 서울>에 실린 안소영, 오수비 등 글래머 여성 연예인은 당대 최고의 스타였다. 중간에 들어 있던 브로마이드는 또 어땠는가. 수영복을 입은 여성 연예인의 사진은 벽에 붙여지고 뭇 남성에겐 소장용으로 가치가 있었다. 그 당시 기차역에서 팔린 <선데이 서울>의 부수가 전체 판매 부수를 좌우할 정도였다. |
동해의 남쪽 풍경, 동해남부선
동해남부선은 포항에서 부산진까지 경상도 해안을 따라 이어진 짧은 라인. 태백산맥의 꼬리 부분이다. 산간 지방에서 평야로, 다시 바다로 굽이굽이 흐르는 철길이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죽동역 벤치 두 개와 지붕 하나 역에는 단출하게 벤치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고 비를 피할 수 있도록 지붕이 살짝 덮여 있다. 여느 버스 정류장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죽동역이라는 푯말만이 이곳이 기차역임을 알려준다. 처음 오는 사람은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역이다. 불국사역 직원의 안내를 받고 겨우 도착한 곳. 기차 레일 너머로 마을이 보이고 간간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발길이 머문다. 그래도 상·하행 하루 세 차례씩, 여섯 번이나 정차하는 간이역이다. 경제 논리로야 없어지는 것이 마땅하지만 죽동역이 사라지고 나면 동네 어르신의 발도 묶일 것이다. 열차가 지나가는 순간을 제외하면 누구 하나 말을 거는 사람이 없는 고요한 곳, 플랫폼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기차를 기다려 보는 것도 고즈넉한 즐거움이 된다. 상행 3회 / 하행 3회
불국사역 신라 천 년의 역사와 함께 숨쉰다 불국사역은 그래도 그 이름과 위치 덕분에 다른 간이역에 비해 관광객의 발길이 꾸준한 편이다. 하루 평균 50~60명의 승객이 오가고 관광하기에 좋은 봄과 가을에는 100명 가까이도 드나든다. 간이역에서는 대개 표를 팔지 않고 열차 내에서 승무원에게 사는 경우가 많지만 승객이 많은 불국사역에서는 상·하행 네 차례의 열차를 이용하는 손님에게 표를 팔고 있다. 목표 수입이 하루 19만원이라니 참 소박하다. 재작년에 리모델링한 역사는 번듯한 모습. 기둥이나 지붕만 그대로 남겨놓고 내부 시설과 외관을 현대식으로 고쳤다. 역사 안으로 들어와 플랫폼으로 나가는 길에 죽 늘어선 가지런한 향나무가 승객을 반긴다. 33년 동안 오로지 철길 위에서 일하다가 올해 정년을 맞은 이곳의 철도운용원은 옛 기차역 풍경을 회상하며 요즘과는 사뭇 다른 그 시절을 이야기한다. 경주가 숨쉬는 한 불국사역의 역사도 계속될 것이다. 상행 4회 / 하행 4회 054-746-0889
송정역 갈매기와 함께 해안을 산책하다 역에서 나오면 바로 바다를 볼 수 있는 기차역은 우리나라에 두 곳뿐이다. 정동진역과 송정역. 하지만 송정역은 2010년 바다에서 조금 더 멀어지는 뒤쪽으로 이전될 계획이다. 기차역이 시내 중심을 관통해 시의 발전에 방해 요소가 되기 때문. 송정에서 해운대로 가는 기차를 타면 해안 절경의 백미를 맛볼 수 있다는데 그것 역시 사라지게 되었다. 평소에는 하루 20명 남짓한 승객이 오고 간다. 상행 4회 / 하행 5회 051-703-7788
삶은 달걀의 단짝, 칠성사이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기차여행의 대표 간식이라면 삶은 달걀과 ‘칠성사이다’. 한때는 기차 내 트렌드였다고 할 만큼 폭발적이면서도 꾸준한 인기를 끌었다. 달걀과 사이다의 절묘한 궁합, 특히 사이다는 달걀노른자를 먹을 때 목이 메는 것을 일순간에 가라앉혀 주는 탁월한 기능을 자랑했다. 사실 요즘은 기차에서 사이다와 달걀을 먹는 것이 자연스럽지는 않다. 예전에는 값이 싼 삶은 달걀로 배를 채울 수 있었다면 지금은 싼값에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요긴한 장난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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