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씨구씨구씨구씨구 들어간다 / 절-씨구씨구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어허 품바가 잘도 헌다 / 어허 품바가 잘도 헌다 1. 일 자나 한 장을 들고나 보니 / 일편단심 먹은 마음 죽으면 죽었지 못 잊겠네 2. 둘에 이 자나 들고나 보니 / 수중 백로 백구 떼가 벌을 찾아서 날아든다 3. 삼 자나 한 장을 들고나 보니 / 삼월이라 삼짇날에 제비 한 쌍이 날아든다 4. 넷에 사 자나 들고나 보니 / 사월이라 초파일에 관등불도 밝혔구나 5. 다섯에 오 자나 들고나 보니 / 오월이라 단옷날에 처녀 총각 한데 모아 추천 놀이가 좋을 씨고 어허 품바가 잘도 헌다 / 어허 품바가 잘도 헌다 6. 여섯에 육 자나 들고나 보니 / 유월이라 유두날에 탁주 놀이가 좋을 씨고 7. 칠 자나 한 장을 들고나 보니 / 칠월이라 칠석날에 견우 직녀가 좋을 씨고 8. 여덟에 팔 자나 들고나 보니 / 팔월이라 한가위에 보름달이 좋을 씨고 9. 구 자나 한 장을 들고나 보니 / 구월이라 구일 날에 국화주가 좋을 씨고 10. 남았네 남았네 십 자 한 장이 남았구나 / 십 리 백 리 가는 길에 정든 님을 만났구나 어허 품바가 잘도 헌다 / 어허 품바가 잘도 헌다
- 전국 공통 각설이 타령 얼시구 시구 들어간다 절시구 시구 들어간다 요놈의 소리가 요래도오 천양을 주고 배운 소리 네 선생이 누군지 남보다도 잘이한다 앉은 고리는 등고리 선 고리는 문고리 한 발 가진 깍귀 두 발 가진 까마귀 세 발 가진 통노귀 네 발 가진 당나귀
1. 각설이 타령 (자진모리)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82년 초연되어 지금까지 4천여 공연을 넘어선 품바가 문헌에 처음 나타난 것은 신재효의 한국 판소리 전집 중 "변강쇠가"이다. "품바"란 타령의 장단을 맞추고 흥을 돋구는 소리라 하여 "입장고"라 불렸다고 하는데 그 말은 "입으로 뀌는 방귀"란 뜻이다. 작품의 배경인 무안군 일로읍 의산리가 품바의 고향으로 일로역에서 동남쪽으로 무안 중학교를 지나 인의산을 가는 길목인 밤나무골 공동묘지 아래가 天使村(일명 걸인촌)이다. 어느해인가 한해가 들었는데 이곳 일로에만 유독히 걸인들이 모여들어 주민 대표들이 모여 "어찌 한해가 들었는데 이곳으로만 모여드느냐?"고 불평했더니, "타향에서 괄세 받고, 푸대접 받다가 이곳 일로에 오니 문전박대 않고 한 끼니만 있어도 나누엊는 지라, 고향에 온 기분으로 떠나지 않고 눌러 앉았다."고 걸인들이 대답하니 주민들은 오히려 그들의 사정을 불쌍히 여겨 더욱더 도와준 후로 천사촌이 이루어졌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각설(覺說)이라는 뜻은 깨우칠"각"말씀"설"로 가진 것 하나없고 조롱의 대상인 각설이가 그 상황을 뛰어넘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르침을 준다는 뜻으로 5000년을 이어온 우리의 걸인패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그 대표적인 것이 품바이다. 해학과 풍자, 날카로운 비판의 한판 춤을 우리는 귀닫아 볼 것이다.
천사마을 -품바!! 각설이 타령을 아시나요? ⊙위 치 : 전라남도 무안군 일로읍 의산리 888번지 천사마을 천사마을이라는 명칭보다는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라는 한국 소극장 공연의 혁신을 가져왔으며, 최장기 공연기록과 함께 해외 공연 이 마을은 각설이 타령의 주인공인 김 작은씨는 본래 목포사람으로 1920년대 ⊙ 교통편(버스) 광주 ⇒ 목포, 무안 직통·직행버스(무안버스터미널 하차) ⇒ 800번 승차 일로읍 의산리 1. 광주 ⇒ 무안행 직통·직행버스(무안버스터미널) ⇒ 일로읍 의산리 2. 무안버스터미널 ⇒ 의산리 천사마을(군내버스이용)800번 좌석버스(일로경유) ⊙ 주요 안내전화번호
연극판에 바친 제 인생
‘표창의 명수’ 박유복을 기억하십니까. 박유복은 지난해 방영된 서울방송 역사드라마 <임꺽정>에 나온 칠두령 중 하나였다. 당시 박유복 역을 맡았던 정규수(42)씨가 지난 12월25일 치러진 ‘98 히서연극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연극인’으로 뽑혔다. “뇌종양을 앓고 있는 어머님께 모처럼 효도 선물을 했다”며 기뻐하는 정씨는 분명 스타는 아니다. 그러나 정씨도 왕년에는 스타였다. 정씨가 처음 연기를 시작한 것은 79년 전남 무안에서였다. 그는 81년 무안예술제에서 1인극 <품바>를 선보이면서 곧장 광주와 서울까지 원정 공연을 할 정도로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신명나게 불러대는 각설이 타령의 재미, 그리고 관객과 주고받는 입심좋은 재담으로 정씨는 몇년간 1500회가 넘게 <품바> 공연을 이어갔다. 제1대 품바배우로 명성을 날린 정씨는 이후 주춤했다. 그러나 정씨는 흔들리지 않았다. 연극은 그에게 천직이었다. 연기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아무리 하찮은 배역이라도 최선을 다했다. 현 연극평론가협회 회장인 구히서씨가 지난 96년 제정한 히서연극상은 수상자에게 거창한 명예나 이익을 주기보다는 구석진 곳에서도 꿋꿋하게 일하는 연극인의 창조작업을 인정하는 상이다. 최소한 연극계 내부에서는 ‘사람의 됨됨이나 연극인생을 고려해 주는 상’으로 유명하다.
자랑스런 전남인 상(고 김시라/ 제1대품바 고수)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가장 낮은 사람'인 각설이의 애환을 타령으로 처음 극화한 제1대 `품바' 김시라(53·본명 김천동)씨가 각설이 타령 17년만에 고향에서 `자랑스런 전남인'으로 뽑혔다. 김씨는 무안군 일로읍 용산리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집 가까이에 있는 걸인촌인 천사촌의 애환을 옆에서 보며 자랐다. 지난 1968년 주민등록제가 실시된 뒤부터 정부가 구걸을 금지시켜 걸인들이 직접 부른 타령은 듣기 힘들어 졌지만 `밑바닥 인생'인 걸인들의 타령에 서려있는 애환은 사라지지 않았다. 문화운동에 빠져있던 그는 곧 각설이 타령을 희곡과 시로 만들었다. 지난 1981년 자신이 직접 제1대 `품바'가 되고 천사촌을 배경으로 남아있는 각설이 타령을 엮어 처음으로 극화한 뒤 무대에 올렸다. `밑바닥 인생'의 애환과 당시 사회를 풍자한 품바 타령의 가사와 가락은 전국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다. 품바타령은 17년간 국내의 유명배우가 대를 물려가며 `품바'로 출연해 지난 1968년6월28일에는 4000회 공연기록을 돌파했다. 또 한국 연극사상 최장기에다 최다 공연, 최대 관객동원이라는 이정표를 만들어 우리 연극으로는 처음 `가장 위대한 평론가는 관객'이라는 것을 입증시켰다. 1994년에는 <한국기네스북>에 기록됐고 미국 10대 도시 60회 순회공연으로 백상예술대상 등을 받았으며,`우리 시대의 명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품바시대> 상·하권을 썼고 <품바> <남바> 등의 희곡도 남겼다. 1997년부터 올해까지 두차례 고향 무안을 찾아와 군민축제에서 `품바'를 공연해 지역민들을 기쁘게 하기도 했다. 상은 오는 31일 전남도청 회의실 종무식 때 준다. 고 김시라 작가님의 기를 기르기 위해 매년 무안 회산백련지에서 전국품바 명인대회를 개최한다. 조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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