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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수박껍질이 생길 때마다 텃밭 여기저기에 묻어두었는데 돌담 쪽으로 싹이 올라왔습니다. 저러다 말겠지 했는데 꽃이 피는가 싶더니만 수박도 열렸습니다. '개똥수박'이 열린 것입니다. 개똥참외는 다섯 개가 탐스럽게 열렸는데 그만 노랗게 익어갈 즈음에 개똥참외 맛이 좋았는지 벌레들의 습격을 받아 그들의 차지가 되어 오랜만에 개똥참외를 맛보겠다던 꿈은 깨졌습니다. 그렇게 개똥참외는 한 철을 다하지 못하고 텃밭에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심고 가꾼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애정을 주었던 것이니 아쉽더군요. 내년엔 개똥참외가 아닌 참외를 심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그런데 그 바통을 이어 개똥수박이 퍼져 가는데 신기하기만 합니다. 개똥참외는 노란 꽃을 자주 보여주었는데 수박 꽃은 여간해서 그 모습을 보여주질 않았습니다. 물론 흔적은 있었지만 조금만 햇살이 뜨거워도 이내 시들어버린 꽃들의 생애가 참 짧은 꽃인가 봅니다.
어쩌면 곤충들의 몫인데 그것까지 빼앗아 먹으려고 하나 생각도 들긴 했지만 '개똥참외는 먼저 맡는 이가 임자라'는 말이 있으니 개똥수박도 내가 먼저 맡아 놓은 것이니 내가 임자라 해도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생각하면서 '내 것'이라고 쐬기를 박습니다. 게다가 지난번 개똥참외는 양보를 해주었으니 딱 하나 열린 것, 이번에는 내가 맛 좀 보자고 했습니다. 장에 갔더니 아직도 수박이 나옵니다. 한창 때보다는 값도 비싸서 한 통에 만 원입니다. 사실 그것 한 통 사면 텃밭에 있는 개똥수박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맛난 수박이겠지만 이런저런 정까지 생각하면 제 아무리 맛나도 개똥수박이 주는 추억만큼은 못할 것 같습니다.
사흘째 유영초의 <숲에서 길을 묻다>(한얼미디어)라는 책에 빠져있습니다. 그 책을 읽다가 가을에 관한 글을 읽으며 '추파(秋波)'와 관련한 이야기들을 읽었습니다. 이 가을의 '맑고 잔잔하고 아름다운 물결의 기호가 추파(秋波)이다. 여인의 맑고 고운 눈짓도 바로 가을 들녘의 물결 같아서 추파라고도 한다. 추파의 시작은 아무래도 풀벌레의 울음소리이다. 가을이 깊어갈 수로고 하늘은 높아가고, 바람은 소슬해지고 일렁이는 추파에 사람들의 가슴이 요동친다. 가을밤이 깊어갈수록 풀벌레 울음소리도 함께 커져만 간다. 그런데 '추파(秋波)'가 가을철의 잔잔하고 아름다운 물결이라는 아름다운 뜻을 가지고 있는데 고작 나에게 추파는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남아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문으로도 그리 쓰면서도 왜 그것을 '가을 물결'이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정관념'이라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이 병에 걸리면 다른 것은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그것이 잘못된 것일지라도-그것 외에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개똥수박, 비록 작고 못생겼지만 그것이 나에게 추파를 던지고, 나는 그 추파에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수박이 한창 나오는 여름철에 피는 수박줄기에도 이렇게 잔털이 많은지 아닌지를 모르겠습니다. 줄기마다 수북하게 목도리를 두른 듯한 잔털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본래 여름철에 피어나는 것이 가을에 피어났으니 추워서 저리 잔털을 수북하게 생긴 것인지, 아니면 여름에 피어나는 줄기에도 저렇게 잔털이 많은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개똥수박. 과연 저 속내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맹숭맹숭 맹탕이라면 그 껍질이라도 늙은 오이 저려서 반찬을 해먹듯이 해 먹을 생각입니다. 사실 그동안 수박을 먹으면서도 몇 번이나 겁질로 반찬을 해먹을까 하다가 농약걱정으로 먹질 못 했었거든요. 여름과일 개똥수박의 추파(秋波). 그로 인해 텃밭에 나가는 길이 즐겁고, 기대가 됩니다. |
출저: 오마이뉴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참 단순하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합니다. 자기의 마음이 끌리면 눈에 콩깍지가 끼고, 그때부터는 좋은 것만 보이게 되는 것이죠. 아니, 단점도 좋게 보이는 것이겠지요. 그러다가 콩깍지가 벗겨지게 되면 좋은 것까지도 좋게 보아주질 못할 때도 있는 것이 우리네 사람들이지요] 맘에 닿는 글귀가 있어 옮겨봅니다 - 범해 -
출처 : 못생긴놈이 추파를 던집니다/세상사는이야기
글쓴이 : 범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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