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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살구꽃 /김 종 제 5-12

土譚 2006. 5. 12. 10:15
  
    열흘 살구꽃 
               김 종 제 
잘 익은 살점 같은 
살구를 따서 
해마다 당신과 나누어 먹었으니 
해미海美와 낙안樂安의 
성문을 열어 
내 섬기는 왕이신 
天主 찾아가는 올 봄에도 
어김없이 살구꽃 피었다 
나의 주인이 둘이 될 수 없어서 
지상의 몸 가진 하나를 부인하니 
먼저 지하 감옥에 갇힌 나와 
후에 밖의 호야나무에 매달린 나와 
붉은 피 멈추지 않는 나와 
마침내 그 핏물에 
마음 적시는 내가 있어 
분홍빛으로 꽃 핀 것인데 
일 년도 아니고 한 달도 아니고 
겨우 며칠 밖에 볼 수 없다고 
평생의 주인을 기다려 
당신의 손길에 닿았으니 
배교背敎의 찬바람에도 
열흘이면 저 기도에 부름 받으리 
언젠가 꽃 필 것이라는 
그 작은 소망을 굽히지 않고 
한결같이 목을 내 주었으니 
흰 피 뿌리며 간 하늘나라에서 
살과 피를 서로 나누며 
금약의 맹세를 하여도 좋으리 
저 살구꽃 다 지거든 
천상의 내 主를 찾아간 것이니 
그곳에서 또 열흘을 꽃으로 보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