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으로

옛날 우리담배

土譚 2009. 3. 13. 06:12


대한민국 최초로 생산된 필터 없는 국산 담배.

예전에는 담배갑 마다 생산의 의미를 부여하였다.

 


초기 생산에서는 한갑에 20개비 든 것이 없었다.

 


인쇄 기술이 낙후되어 이미지는 흐리지만 민족의 얼을 느끼게 한다.

 


 

 


국군 장병들에게 무상으로 지급되던 화랑담배.

군에 다녀 오신분이라면 누구나 향수에 빠져드는 담배.

 


이 담배는 농 어촌 서민들이 많이 피우던 값이 싼 담배.

책장을 찢어서 조금 집어 놓곤 돌돌 말아서 피웠거나 담뱃대(장죽) 담아서 피웠다.

 


6.25전쟁 상처를 재건할 때 생산된 담배.

 


민족의 얼이 담긴 아리랑.

58년에 생산되어 80년대까지 생산되었다.

국내 최초로 필터 담배가 생산 되었으며 이전에는 니코틴을 100% 체내로 다 흡입되었다.

 


 


 


오래도록 사랑받던 담배.

 


 


지금의 베트남이 월맹공산주의와 월남민주주의로 나눠져 있을 때 한국이 유엔군으로 파견되어

있었을 때 이다 (우리나라처럼 남북으로 나눠져있다가 76년에 월남이 패망)

 


새마을 운동사업이 한창일때 생산 되었으며 이때 노래 새벽종이 울렸네가

전국 방방 곡곡으로 매일 아침마다 관공서를 통해서 울려퍼졌다.

 


국내 첨으로 파이프용으로 생산되었으며 특히 마도로스(선장)들 사이에 인기가 좋았다.

파이프를 입에 물고 뱃고동 소리와 함께....

 




오래도록 사랑받던 담배.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비싼 답배를 피는 애연가들이 많이 늘어났다.

 


 


처음 외국 관관객용으로 생산되었다가 대중화 되었다.

 


새마을 사업이 절정에 달했을때 생산 되었으며 농어촌의 판매량 1위를 고수했다.

 


조금 사정이 좋은 사람들이 많이 피웠다.

 


 


국산 담배로서는 제일 고급 담배였다.

 


이 담배는 박하 담배로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담배를 통해서 흘러온 역사를 엿볼 수가 있다.

일제 강점기와 6.25사변을 겪으면서 희노애락을 같이 해 온 담배.

담배 한모금에 시름을 잊고.. 담배 한모금에 주린 배를 달래고...

담배 때문에 목숨을 잃기도 한 선조님들의 한이 서린 기호식품이다.

 

   이 시대에는 금연장소는 없었다.

 

1. 시골길 버스속에 발디딜 틈이 없어도 담배는 꼭 피워물고 겨울철에는 숨이막힐 지경이었다.

   비포장 먼지와 담배 연기가 자욱한 버스안에서는 옷에 구멍 뚤리기 예사였다.

 

2. 극장에서는 흑백 영화가 상영되는데 담배 연기로 인해 화면이 부옇게 보이지 않았고

   여기 저기 껌을 씹고 침을 뱉고 담배를 피워도 누구하나 제재하는 이가 없는 시절.

 

3. 열차 속에서도 담배, 길거리서도 담배, 당시에는 왜 그리도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4. 농촌 품앗이나 막도동을 하고나면 담배 한 갑과 실장갑 1켤레는 관례적으로 주인이 지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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