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이론

우리의 춤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土譚 2007. 4. 12. 12:41

승무는 흔히 중춤이라고도 하지만 불교의식(佛敎儀式)에서 승려가 추는 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민간연향(民間宴享)에서 무원(舞員)이 흰 장삼을 입고 흰 한삼을 끼고 붉은 띠 모양의 가사를 매고 흰 고깔을 쓰고 추는 춤을 가리킨다. 재(齋)와 같은 큰 불교의식에는 승려들이 법고춤(法鼓춤), 바라춤, 나비춤 등을 추는데 이것은 승무(僧舞)라고 하지 않고 작법(作法) 또는 법무(法舞)라고 부르며, 현행 작법은 승무와 춤이 다르다. 승무는 탈춤에서의 노장춤, 상좌(上佐)춤, 목중춤, 법고춤과 같은 중춤과 한량무(閑良舞)에서의 중춤과 농악(農樂)에서의 조리중춤과 같은 여러 민속적인 중춤을 토대로 하여 민간연향에서 판놀음을 벌이던 창우(倡優)들 가운데 뛰어난 무원들이 판놀음의 중춤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승무는 창우들의 판놀음에서 발전하여 민간연향에서 두루 연행되었는데, 조선 말기에는 신갑두(申甲斗), 백설채(白雪彩), 한성준(韓成俊)과 같은 승무 명인들이 나왔다. 1900년대에는 협률사(協律社), 광무대(光武臺), 원각사(圓覺社)와 같은 극장 무대에서 승무가 공연되었고 특히 승무의 무대 공연에는 한성준의 활약이 컸다. 승무는 지역마다 약간씩 특징이 다르게 전승되어 왔는데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한성준에 의하여 발전된 경기(京畿), 충청(忠淸) 승무와 이대조(李大祚)에 의해 발전된 호남 지방의 승무이다. 한성준의 춤은 한영숙에게, 이대조의 춤은 이매방에게 전승되었는데, 한영숙은 이미 작고했다. 승무

 

승무는 해금, 젓대, 목피리, 곁피리, 장고, 북으로 편성된 삼현육각(三絃六角)의 반주로 춘다. 먼저 매우 느린 6박자인 긴염불의 반주로 춤을 추는데 매우 느리게 움직일 듯 말 듯 어르다가 돌연히 한삼을 날려 교묘한 곡선을 그려가며 춘다. 이윽고 좀 빠른 6박자인 반염불(半念佛)의 장단에 세워 놓은 북을 몇 차례 어르며 치고 나서, 씩씩하고 구성진 4박 장단인 타령(打令)에 까치걸음으로 발을 딛고 완자걸이로 한삼을 뿌리고 연풍대로 돌면서 활달하고 유연하게 춤을 추다가, 흥겨운 4박 장단인 굿거리에 발을 벌리고 몸을 굽혀 무릎을 꿇고 한삼을 꼬리치며 뿌리고 한삼을 걸치며 일어서서 여러 교묘한 사위로 흥겨이 춤을 추다가, 오금을 굽히고 손을 소매에서 꺼내어 북채를 양손에 쥐고 세워 놓은 북을 어르며 간간이 치다가, 활달하고 구성진 자진모리 가락으로 북을 치며 끝 무렵에는 매우 빠르고 격렬한 휘모리 가락으로 북 가락을 몰아가다가, 마지막에는 다시 흥겨운 굿거리 장단에 팔을 소매에 넣고 한삼을 뿌리며 춤을 추다 마친다. 승무는 춤에 뛰어난 명인들에 의하여 가꾸어진 춤인 만큼 춤사위가 매우 세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남도민속무(南道民俗舞)가 갖는 달고 어르고 맺고 푸는 리듬의 섬세한 표현과 중춤이 갖는 한삼사위의 오묘함이 조화된 매우 우수한 춤으로 꼽히고 있다.

 

위의 사진는 무용가 인남순의 승무공연 장면으로 국립국악원 토요상설무대의 모습이다. 한성준선생의 승무를 온전히 물려받아 남성적 특성이 강한 춤사위로 구성된 것으로, 김천흥선생이 사사받고 다시 그대로 보존되어 1967년부터 무용가 인남순에게 전수한 승무로서 현재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은 승무와는 또다른 예술성을 지닌다.

 

 

살풀이춤

살풀이춤의 유래는 조선조 중엽 이후 나라가 안정되고 서민문화가 활발히 전개되면서부터 광대예술이 발전함에 따라 창우(倡優)들이 창작한 춤으로 보인다. 살풀이춤의 핵심적인 형식은 손에 수건을 들고 남도무악인 「살풀이」에 맞추어 추는 것인데, 이때 수건을 들고 추는 까닭은 춤을 만들어 낸 창우(소광대)들이 판소리를 할 때 땀을 닦거나 멋(발림)으로 사용한 데서 온 것이거나 아니면 춤꾼이 자기의 감정을 확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라 생각된다. 살풀이곡을 반주 음악으로 사용한 이유는 창우들이 무당 출신이고 그들은 인간적으로 어두운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슬픈 곡을 선택한 것으로 여겨진다. 살풀이그러나 한편으로는 소리광대들을 중심으로 창우들이 한말 때 식량이 풍부한 호남 지방으로 모였기 때문에 이곳의 무악인 살풀이곡을 사용하게 된 것이라 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살풀이춤은 사랑방에서 손님을 접대할 때 예술적으로 보여 주는 공연예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춤은 원래 살풀이춤이라 하지 않고 「수건춤」, 「산조춤」, 「즉흥춤」이라는 명칭의 수건춤이었으나, 춤꾼 한성준이 1903년대 극장공연에서 「살풀이」라는 말을 쓴 데서부터 그 명칭이 비롯된다. 그러나 살풀이춤은 한성준이 창작한 춤이 아니라 조선조 중엽 이후 창우나 기생들이 판소리와 병행하여 승무와 같이 연행하였으므로 춤사위의 호칭도 대삼, 소삼, 잉어잡이, 완자걸이 등 판소리 음악의 용어가 나온다. 그런데 이러한 춤은 왜정시대에는 기생춤으로서 한(恨)에 치우친 예술로 자리하였으나, 지금은 대학 풍물학과 학생들에게 한국무용의 기본이 되면서부터 한층 고전무용으로 정립된 것이다. 살풀이춤은 경기도 지방에 전승된 김숙자류의 춤과 전라도 지방에 전승된 이매방류의 춤이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로 지정되었는데, 김숙자는 작고하였다. 김숙자류의 춤이 섬세하고 고운 면을 가지고 있다면 이매방류의 춤은 구수하면서도 화끈한 멋을 가지고 있어서 대조적인 멋을 보이고 있다.

위의 사진은 김천흥류의 살풀이로서 다른 살풀이춤과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한량무

옛부터 멋과 풍류를 세월에 안은 많은 선비들이 있어 왔던 바, 이들의 투박한 듯한 춤사위와 특유의 덧배기 사위들이 조화로운 형태로 변모되면서 오늘의 한량무의 모태가 되었다.

고도의 절제된 기교가 그 특징이며 비교적 담백한 소박미를 내포하고 있고, 호방한 남성적 기개가 돋보이는 춤이다.

 

한량무

 
입춤  

입춤

춤추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들이 구음, 즉 입타령을 하면서 추기도 하며 누구나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대중성을 지닌 춤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춤은 한국 춤의 참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기본춤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매방류 입춤은 입춤의 기법 중에서 호흡법과 발디딤법, 양우선법 등을 토대로 해서 재구성한 2인무이다.

 

태평무

태평무는 명무자(名舞者)였던 한성준이 추어온 공연춤의 하나이다. 태평무가 어느 때부터 전승되어 왔는지에 대하여는 확실히 알 수가 없으나 문헌 기록이나 국악인들에 의해 전해 내려온 근거로 보면 약 백 년 전부터 추어 왔던 춤임은 틀림이 없다. 태평무의 반주 음악이 경기도 무속음악의 가락으로 되어 있고 춤 또한 경기도 무속춤의 동작을 엿볼 수 있으므로, 태평무는 경기도 도당굿에서 행하던 무속음악과 무속춤을 한성준이라 하는 춤꾼에 의해 공연춤으로 재구성한 예술적 춤이라 할 수 있다. 태평무는 그 내용이 왕과 왕비가 풍년과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뜻에서 춤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다. 태평무

 

이 춤의 전승 계보를 살펴보면 한성준이 춘 춤이 한영숙, 강선영으로 이어졌으며 지금은 이 춤을 국가에서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함으로써 강선영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태평무의 무복(舞服)은 남성 무용수인 경우 왕이 입었던 옷차림이고 여성 무용수인 경우 왕비가 입었던 옷차림이다. 춤 장단은 낙궁 장단, 터벌림, 올림채, 도살풀이 등인데 다른 춤의 장단에 비해 장단이 복잡하므로 음악을 알지 못하고는 춤을 만들 수도 없고 춤을 출 수도 없는 것이 특징이다. 예능보유자인 강선영에 의하면 태평무는 춤 장단만 익히는 데 3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실제로 전통무용을 학습할 때 먼저 승무, 살풀이춤을 배운 다음 태평무를 추는 것으로 보아 이 춤이 배우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하여 태평무를 출 수 있게 되면 비로소 춤꾼이 될 수 있다. 태평무의 춤사위는 승무의 장삼뿌림과 경기 무속춤 또는 궁중무용의 춤사위 등이 엿보이나 그것보다는 「겹걸음」,「따라붙이는 걸음」,「잔걸음」, 「무릎들어 걷기」,「뒤꿈치 찍기」 등이 우선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태평무는 우리 나라 춤 중에서 가장 기교적인 발짓춤이라 할 수 있고 공연 예술로서 승무, 살풀이춤과 더불어 정중동의 미적 형식을 가진 완벽한 춤이라 할 수 있다.

 

 

진도북춤  

진도북춤

북을 치면서 추는 춤이다. 북춤의 기본은 가락을 연주하는 것과 가락 사이에 춤을 추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지역 북춤은 대개 북채가 하나이지만 진도북춤은 두개의 북채를 쓴다. 양손에 북채를 나눠들고 추며, 나는 듯 머무는 듯 몰아치고 되돌아가는 멋이 천길 낭떠러지에 내리꽂히는 물줄기같은 멋이 있다. 굿거리, 자진모리, 동살풀이, 다스름, 호성, 후두룩 가락으로 넘어가는 북장단은 화려하고 발놀림, 팔사위가 멋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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