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22장: 누가 어린 양을 죽이려 하는가
유월절이 가까이 오매(1)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죽일 방책을 연구하는데(2)
이는 저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함이며
자신들이 쌓아 온 성이 무너질 것을 염려하기 때문에
예수를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일에 가롯 유다도 합류하는데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줄 방책을 의논하며(4)
돈을 받고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습니다(5-6)
하지만
저들이 주님을 죽이려한다고 주님이 죽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유월절 어린 양의 죽음은 아버지의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유월절 어린 양이 되신 것입니다(7-46)
출애굽 당시 여호와께서
애굽의 처음 난 것을 죽음으로 치실 때
이스라엘이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림으로 죽음이 넘어간 것과 같이
주님께서 스스로 어린 양이 되심으로
당신의 피로
당신의 백성을 사망으로부터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해
주님은 스스로 저들에게 잡히시어(47-53)
희롱 당하시고 매를 맞으시는데(63)
베드로는 이러한 주님의 모습을 보고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계집종에게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것이(54-60)
본문의 내용입니다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어린 양을 죽이고 부인하는 모습은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똑 같습니다
그러한 모습이 영의 세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과 자신들이 쌓은 성을 보호하기 위해
어린 양을 죽인 것과 같이
오늘날 종교 지도자들도
예수님의 이름을 팔아 자신들의 성 쌓기만 급급하니
자신들이 쌓은 성을 위해 어린 양을 죽이는 것이고
가롯 유다가 은 삼십에 어린 양을 판 것 같이
오늘날 성도들도 십자가의 삶보다는
주님을 믿는 것이
자기들의 정욕과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니
돈을 좇아 주님을 팔며
주님을 사랑한다고 한 베드로가
육신의 안위 때문에 주님을 부인한 것 같이
오늘날 주님을 사랑한다는 성도들도
주님보다는 자신의 육신을 더 사랑하니
주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유월절 어린 양을 죽이는 자들의 모습과
부인하는 모습이 거울이 되어
나의 신앙을 되돌아 봄으로
어린 양의 피로 구원을 온전히 이루는
은혜가 있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