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23장: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라
주님께서 십자가로 나아가는 길에 있어
죄가 없음을 서론으로 먼저 강조합니다(1-25)
주님께서 죄가 없음을
빌라도의 심문을 통해 강조하는데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4)
“너희의 고소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14)
“해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저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저의 행한 것은 죽일 일이 없느니라”(15)
“나는 그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22)
두 번째 십자가에 나아가는 길에 있어서
구레네 사람 시몬을 붙잡아
억지로 주님의 십자가를 지게 하는데(26)
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주님이 지셔야 할 십자가를
구레네 사람 시몬이 대신 졌다고 말들 합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표현입니다
주님이 지실 십자가를
시몬이 대신 짊어 진 것이 아니라
죄인인 시몬과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십자가의 구원은 구레네 사람과 같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지
자신은 십자가를 외면하면서
주님이 대신 지셨기 때문에 죄 사함 받았다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를 미신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세 번째 십자가로 나아가는 길은
십자가는 죄의 댓가로서의 심판이라는 것입니다(27-43)
십자가의 길로 끌려가는 주님을 보고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를 보시고(27)
주님은 말씀 하십니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의 자녀를 위하여 울라 하시며(28)
푸른 나무와 같이 죄가 없는 나에게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와 같이 죄 덩어리인 너희는 어떻게 되리요(31)
하심으로
죄에 댓가로서 받는 십자가의 심판을 알려 주십니다
그런데도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행악자는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심각성은 깨닫지 못하고
주님을 조롱하고 비방하는데(39)
오늘날의 교인들이
자신의 죄의 심각성은 망각한 채
나의 죄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다 용서해 주었기 때문에
나는 죄를 지어도 죄인이 아니라고 하며
죄를 망각한 채 죄 된 생활을 반복하는 것은
십자가에서 심판받은 주님을
조롱하는 또 다른 모습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성도는
주님께서 당하신 십자가 심판의 의미를 잘 알기에
성결 된 삶을 살기 위해 늘 기도하는 성도입니다
네 번째 십자가의 길은 주님이 운명하심과 동시에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로 찢어진 것입니다(44-49)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지성소를
휘장으로 가렸다는 것은
하나님 만나는 길이 가려졌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 하니 하나님이 아담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는데(창3:24)
이는 성소의 휘장의 본체입니다
지성소는 에덴동산이고
휘장은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득불 사람을 만나야 하니
성소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만나되
생명의 길은 지켜야하시기에
당신의 임재를 알리는 장소인 지성소를
휘장으로 가리신 것입니다
그 저주의 휘장이
주님의 운명과 동시에 찢어졌습니다
죄의 무서움은
하나님과 분리이며 생명과의 분리인데
주님은 당신이 죄인 대신 죽으심으로
죄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 만나는 길이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의 길로 나아가시는 과정에
우리가 꼭 은혜 받아야 할 부분은
구레네 사람 시몬이 진 십자가입니다
시몬이 진 십자가는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이 사건이 의미하는 바는
네가 구레네 사람 시몬이 되라는 것입니다
네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야
십자가 은혜에 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로만 은혜를 구하지 말고
네가 주님을 따라
십자가의 삶, 희생의 삶을 살아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네가 믿음으로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면
거기서
주님은 당신의 피로 죄를 씻어 주시고
위로하여 주시며 새 생명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십자가 믿음은 허상이 아니고
실체가 있어야 함을 알아
말로만 십자가를 믿는다고 하지 말고
구레네 사람 시몬과 같이
골고다의 언덕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을 살아
주님의 죄 사함의 은혜에
온전히 거하는 축복이 있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