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소식

크메르족의 고향 참파삭

土譚 2010. 8. 21. 12:15

[나의 여행기] 크메르족의 고향 참파삭
자료 캄보디아 사랑하는모임

 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의 새벽. 바깥은 아직도 컴컴하다. 라오스는 승려들의 탁발 풍경이 다소 특이하다. 태국이나 인근의 스님들이 삼삼오오 다니는 것과는 달리 이곳에선 적어도 삼 사십 명, 혹은 오 륙십 명이 황색 법복을 입고 옆구리에 탁발을 위한 통을 하나씩 끼고 일렬로 줄을 서서 절을 나서는 모습은 그것만으로도 가히 장관이다.

아침 6시 비엔티안 공항. 라오스의 남부도시 팍세 행 48인승 프로펠러 항공기가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항공기는 출발예정시각인 7시보다 10분이나 일찍 이륙했다. 이것은 라오스에서는 무척이나 드문 일이다. 대개의 경우 국내선 항공기의 연착은 이곳에서는 밥먹듯이 하기 때문이다. 항공기가 일찍 출발하는 것이 웬지 이번 여정이 여러모로 순조로울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아침 햇살을 받으면서 항공기는 남쪽을 향해 날아갔다. 까마득한 저 아래로는 라오스의 거의 전 지역을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있는 메콩강의 줄기가 굽이치는 용의 모 습 처럼 꿈틀거리며 햇빛에 반사되었다. 1시간 여 날았을까. 항공기는 마침내 참파삭 지방의 주도 팍세 공항에 착륙했다. 공항은 우리 시골의 간이 버스정거장처럼 초라했다.

일행은 우선 고대 크메르인의 도시가 있었던 참파삭(Champasak)으로 향했다. 이곳은 4세기 경 지금의 베트남지역에 세력을 펼치고 있던 참파 왕국이 그 세력을 미쳤던 곳으로서 참파삭이란 이름은 바로 이러한 연유로 인해 이름 지어졌다. 참파가 물러간 후 6세기경부터 크메르인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고 힌두교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독특한 문화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13세기에 이들의 세력은 절정에 달하여 지금의 캄보디아에까지 세력을 확장하고, 그곳에 거대한 앙코르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14세기 후반에 앙코르제국은 시암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어떻게 그 거대한 제국이 하루아침에 멸망하고 말았는지, 그리고 그들의 유적이 이후에 모두 갑자기 사라져버렸는지 오늘날에도 베일에 쌓여있다. 아무튼 크메르인들은 당시 풍수지리를 참 고하여 시바의 상징인 링검(남자의 성기모습을 한 생명력의 상징)처럼 생긴 산기슭에 사원을 만들었고, 수도를 앙코르왓으로 이전한 이후에도 자신들의 고향인 이곳의 사원으로 해마다 순례를 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사원의 이름은 왓 푸(Wat Phu). 이름 그대로 산사(山寺)라는 의미를 갖는다. 당시 이들은 이곳에서 해마다 6월이 되면 순결한 처녀를 제물로 악의 여 신인 칼리에게 바쳤다. 칼리는 순결한 처녀의 피만을 즐겨 마셨던 모양이다. 당시 제물로 처녀들을 희생했던 돌이 남아있는데, 돌에는 악어모양의 홈이 깊게 파여 있고 그 홈을 따라 처녀를 눞인 다음 심장을 찌르고 그 피를 옆으로 받아서 칼리에게 바쳤다고 한다. 마침 어린 소녀가 졸졸 따라 오길래 안내원을 시켜 소녀에게 그곳에 누워보라고 하자 무섭다면서 단호히 거절했다. 아이들도 그 얘기를 전해 들어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산 중턱에 놓여진 칼리사원을 참배하기 위해 멀리서 오는 순례객들을 위해 산 아래쪽 평지에는 궁전을 만들었다. 궁전은 두 개로 나뉘어 건축되었고 각각 남자와 여자들이 이곳에서 참배 전에 몸과 마음을 씻는 장소로 사용했다. 지금은 17세기 경에 있었던 대 지진으로 인해 도시는 물론 이 사원과 궁전의 상당부분이 파괴되었다. 이 왓푸의 유적 일대는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유네스코에서 그 관리를 맡고 있다.

왓푸를 뒤로 하고 먼길을 달려 콩 섬으로 향했다. 도중에 '폰사앗'이라는 소수족 마을에 들르게 되었다. 이 마을에는 '파라오(Pa Lao)라는 소수민족 60여 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마침 1년에 한번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이 행사는 전날 저녁부터 시작된 것으로 물소 한 마리를 길다란 밧줄로 코를 꿰어 매어 놓고는 뒤에서 매질을 한다. 소는 매를 맞으며 본능적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밧줄이 말뚝에 묶여 있으므로 소는 말뚝을 계속 돌게 된다. 밧줄은 말뚝에 감기면서 점점 짧아지고 소는 뒤에서 매질은 계속된다.
소는 점점 고통을 참을 수 없게 되고 울부짖기 시작한다. 이미 밤은 어둡고 주위는 적막하다. 소의 울음소리는 멀리 메아리가 되어 마을 구석구석 퍼져 나아간다. 소의 울음소리가 미치는 곳까지 그 해의 액운이 사라진다고 사람 들은 믿는다. 마침내 소는 고통에 숨을 몰아 쉬다가 지쳐 쓰러지게 되고, 이 때 커다란 칼이 소의 목에 내려쳐진다. 목은 단 칼에 베어지고 그 베어진 머리는 말뚝에 얹히어 사흘 밤낮을 지내게 된다.  밤이 깊어지면 그 소를 잡아 요리를 하고, 남자들은 마을의 회관에 모여 밤새도록 술과 안주를 즐기면서 마을의 안녕에 대해 의논한다. 술은 가늘고 긴 대나무를 이용해 빨아 마시는데, 다음날 저녁까지 이틀 동안 이어진다.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방안 한쪽에서는 여러 개의 징을 걸어놓고 둥둥 친다. 우리가 도착한 것은 오후였는데, 아직도 그 전날 저녁부터 이어졌던 행사가 계속되고 있었다.

콩섬(Khong Island)은 시판돈(Si Pan Don)이라는 주의 주도로서 가장 큰 섬이고 약 5만 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곳이다. 시판돈은 '4000개의 섬'이라는 뜻으로서 이곳에는 유무인도를 포함해서 수 천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메콩강 위에 떠있는 아름다운 지역이었다. 마침 왓 푸를 위한 축제의 일환으로 미스 시판돈 선발대회가 있어, 선발된 아름다운 여인을 보게 되었다. 이런 오지에 어떻게 이토록 아름다운 여자가 있을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미인이었다. 이런 행사에 맞춰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은 여간 행운이 아니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라오스. 그러나 이들의 얼굴은 물질의 단순비교만으로는 결코 나타날 수 없는 아름답고 해맑은 얼굴들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미인보다도 열심히 셔터를 눌러대는 우리가 더 구경거리였다.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즐겁게 바라보는 마을 주민들의 눈에는 소박함과 순진함만이 가득 담겨있을 뿐이었다.

이튿날 새벽, 이곳의 소박한 시장을 찾아 나섰다. 메콩강의 일출과 함께 문을 연 아침시장은 매우 흥미롭다. 강에서 잡은 손가락 만한 물고기 두어 마리를 좌판에 얹어놓고 지나가는 행인들을 살피는 대 여섯 살 짜리 어린아이에서부터, 어디서 잡았는지 조그만 개구리를 한 그릇 잡아와서 팔딱 거리는 것을 보여주면서 사 가라고 권하는 할머니, 무섭지도 않 은지 커다란 뱀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정력에 좋다고 우리에게 권하는 인심 좋게 생긴 아줌마의 웃음, 커다란 대나무로 담배를 피고 있는 아저씨 등등...아뭏든 시골의 시장풍경은 어느 곳에서나 고향처럼 푸근한 것 같았다.

콩섬을 나선 일행은 라오스 최대의 폭포인 폰파펭(Phon Pha Pheng)으로 향했다. 폭포를 봐서 뭐하겠느냐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일단 가보기로 했다. 콩섬에서 약 15km정도 떨어진 캄보디아와의 국경, 메콩강의 지류가 폭포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안 봤으면 정말 후회할 뻔했다. 폭이 약 80M, 낙차 17M의 거대한 폭포가 아시아에, 그것도 라오스에 있을 줄은 정말 몰랐었다.

라오스는 우리나라 남북한을 합친 면적보다 약간 큰 나라인데도 인구는 통 틀어 겨우 4백 7십만에 지나지 않는다. 주로 농산물을 경작하여 먹고 살며, 풍부한 수자원을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해서 인근 태국과 캄보디아에 수출하는 것이 고작인,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하며, 민족도 아주 다양해서 수많은 종류의 소수민족들과 라오족이 메콩강 가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가난하다고 여기는 것은 우리의 일차원적 사고에 지나지 않는 것. 막상 이들이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자랑하고 있는 물질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물질이란 가지면 가질수록 더 복잡해지는 것. 이들에게는 그러한 욕심보다는 즐거움을 이웃과 나누면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더 자신들의 꿈일 것이다. 그러한 마음가짐은 이들의 평화롭고 밝은 표정에서 여행하는 기간 내내 느낄 수 있었다.



1. 교통편
서울에서 라오스의 수도인 비엔티안(Vientiane)까지는 직행이 없으므로 방콕에서 갈아타야 한다. 방콕에서 비엔티안까지는 매일 라오스항공과 타이항공이 운항하는데, 서울에서 당일에 도착을 하고 싶다면 서우-방콕구간은 타이항공, 방콕-비엔티안까지는 라오스항공을 이용하면 된다. 단 서울에서 비엔티안까지는 수하물을 보낼 수 없으므로 방콕까지 보낸 다음, 방콕 공항의 Transfer Desk에서 Retagging을 해야한다. 비엔티안에서 왓푸를 가기 위해서는 팍세(Pakse)까지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한다. 편도 $95. 팍세에서 왓푸까지는 32km 정도. 썽태우(적재함에 의자를 만들어 놓은 미니트럭)를 흥정해서 이용할 수 있다. 왓푸에서 시판돈까지는 자동차와 배를 이용하여 도착한다. 이 구간은 하루 한 번 씩 버스가 운행된다. 운이 좋으면 트럭을 히치하이크도 할 수도 있다.

2. 입국절차
라오스는 입국비자를 비엔티안 공항에서 받을 수 있다. 공항에 내리면 입국장 내에 비자신청서와 비자를 접수하는 창구가 있으므로 신청서를 작성해서 $30과 함께 접수하면 바로 내준다. 양식에는 사진을 붙이도록 되어있으나 안 붙여도 무방하다.

2. 숙박
비엔티안에는 1급호텔부터 게스트하우스까지 다양한 숙박시설이 완비되어있다. 숙박료는 호텔의 경우는 제법 비싼 편 이다. 일반적으로 게스트하우스는 $20 선이면 이용이 가능하다. 비교적 깨끗하고 친절하다. 지방의 도시들은 고급호텔을 갖추고 있지 않으므로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한다. 주로 외국인이 잘 묵는 업소가 어딘지 물어보고 참고하는 것이 좋다.

3. 식사
라오스의 음식은 우리 입에 잘 맞는 편이다. 밀짚바스켓에 쪄서 나오는 찰밥은 맛이 일품이다. 음식값도 무척 싼 편으로, 점심이나 저녁을 $3-5 정도면 근사하게 즐길 수 있다. 웬만한 식당에서는 미화나 태국의 바트가 잘 통용되며, 어떤 곳은 라오스 화폐보다도 미화나 바트를 더 선호한다.

4. 주의사항
라오스는 대도시를 벗어나면 길이 나쁘고 교통도 불편한곳이 많으므로, 예정시간보다 더 많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일정을 짤 때 유의해야한다. 또한 오지를 여행할 때는 말라리아 예방약을 복용해야 한다. 시골의 소수부족 마을을 여행할 때는 사전에 촌장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