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당 당 당 덩 덩 덩더러덩 덩기덕 덩더러덩 덩기덕 덩더러덩 덩기덕 덩더러덩(수월타) 덩 덩더러덩 덩기덕 궁 딱 궁 덩기덕 덩더러덩 덩다다닥 궁딱궁 덩기덕 덩더러덩 덩기덕 덩더러덩 덩기덕 덩더러덩 덩기덕 덩더러덩(수월타) 덩기덕 덩더러덩 덩기덕 덩더러덩 덩기덕 덩더러덩 덩기닥 궁 딱 더덩기덕덩더러덩 더러덩덩 덩더러덩 당징당 당징당 당징당 당징당 당징각 당징당 각징당 당각장 다기다기다기다기다기다기(반장단;2회) 다기다기다기다기다기다기 더더덩덩 덩더러덩
정기 적기 정기 적기(북채) 정기 적기 정기 적기(북편;X타법) 더더구 더더구 더더구 더더구(표준;4회) 더더구 더더구 더더구 더더구(공박수월타;4회) 더더 구더더구 더더 구더더구(단박수월타;4회) 다기다기다기다기다기다기(수월타;4회) 더덩더덩 등기당당(3회) 덩떡꾸 덩떠구더구(후렴)
당 당 당 당
덩 떡꾸 덩떠구더구 덩 떡구 덩떠구(표준;4회)
5)휘몰이 덩떡구 덩떡구 덩떡구 덩떡구(2회)
6)인사굿 당 당 당 당 더러덩덩 덩딱
진도의 농악 역시 마찬가지이다.상쇠로는 지산면 소포리 정덕관, 북으로는 박태주 씨가 타개 함으로 많은 손실이 있었다.예로부터 북놀이를 법고놀음 또는 법구놀이 라고 전해온 것은 불가에서 비롯 되었다고 한다. 북은 인간이 소유한 악기 중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 졌다고 하며 농악(의식축원농악,군악관계,불교관계) 에서 파생되어 민속음악에 기본적으로 사용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으나 장구와는 달리 독자적인 놀이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었다.장구는 설장구를 바탕으로 민속화 되었고 농악에서 분리되어 일제중기 후에 여성중심의 민요와 춤 장단으로 개발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산면 소포리 농악대에서 박태주씨는 상쇠의 유도에 따라 개인적인 북을 쳐,많은 사람의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다.이렇듯 진도지방에서 농악놀이를 할 때마다 북춤(놀이)은 독자적으로 개발되어 왔으며 그것을 [풍장굿]이라고 말하고 있다.풍장굿이라 함은 농악에 쓰는 풍물로 경사.명절(4대명절)때 치고 노는 것을 말한다. 또한 모내기를 할 때면 모내기 소리와 사물놀이의 웅장하고 흥겨운 음악소리에 모꾼들은 흥을 내어 어정거리면서 피곤함을 잊은 듯 즐거운 마음으로 모내기를 하였다고 한다. 여기에 북잡이는 태양아래 뜨거운 빛을 피하기 위해 삿갓을 쓰고 두개의 북채을 들고 모꾼들을 지휘봉 삼아 지휘 통솔하였으며 모 줄 간격이 맞지않거나 이가 빠진 모를 지적하여 빠짐없이 모내기를 하였다고 한다. 쉬는 시간이나 작업이 끝나게 되면 논두렁이나 농로(農路)에서 한 마당 풍장굿이 이루어질 때마다 북춤(놀이)가 한층 덧 보였으며 인기를 독점하였다고 한다. 이것을 북춤 또는 북놀이 라고 말하여 왔다.위와 같이 북춤놀이를 애용하게 된 것은 다른 악기보다 만들기가 쉽고 북을 메고 다니기에 별다른 불편이 없었으며 지산면 소포리는 소금의 생산지로서 서해안의 모든 어선과 근해의 도서지방 사람들까지 소금을 얻기 위해서 진도 소포를 많이 찾아 왔다. 이때 어선들의 선주는 바다의 평온함과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서 용왕신께 풍어제를 모셨다. 이때 배위에는 꽹과리,북,징만이 올라와 풍어제의 악기로 사용했다.장구는 이에 반해 개가죽을 사용한다 하여 바다와는 아주 상반했던 모양이다. 이 때문에 진도의 북은 장구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두개의 채를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농악과 민요가 발달된 풍토에서 진도북춤은 별개로 분리되어 다듬어져 왔으며,북춤(놀이)는 남도예술의 본산지인 진도가 예향의 고장임을 입증해 주고 있다. 필자는 농악을 연구하는 사람은 아니나 우리나라의 전통민속놀이(춤)와 일본의 민속학을 공부하며, [진도북춤놀이]을 글로 표현 함에 있어 다소 부족함을 느끼면서,더욱 연구 보완하여 후학들에게나 실기인들에게 보탬이 되도록 거듭 노력할 것을 다짐하며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2)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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