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이론

판소리 뿌리는 세습광대

土譚 2006. 3. 17. 08:35
"판소리 뿌리는 세습 광대"


(::서울대 한국문화硏 손태도 박사 실증규명::)

지난 8일 유네스코(UNESCO)로부터 세계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된 판소리 등 수준 높은 우리 전통예술은 어떻게 발전된 형식으로 지금까지 유지해 올 수 있었을까. 이같은 궁금증을 풀게됐다.

고려 중기부터 조선말까지 세습적 ‘광대집단’이 존재했으며, 판소리도 이들 집단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같은 연구결과는 그동안 정설로 여겨온 판소리의 서사무가(敍 事巫歌)기원설을 뒤집는 것이어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 손태도(44·서울대 강사) 박사는 최근 발 간한 ‘광대의 가창문화’(집문당)에서 “신분제가 유지됐던 조 선시대 말까지 관청의 행사에 공식적으로 동원됐던 ‘광대집단’ 의 존재와 역사가 실증적으로 입증됐으며, 그들의 가창문화 중 ‘재담소리’가 바로 판소리의 기원”이라고 밝혔다.

손 박사는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산대희’와 ‘나례희’, 과 거 급제자의 축하행사 등 중앙과 지방의 각종 관급행사를 위해 일정규모의 광대집단이 지속적으로 필요했다”며 “이미 고려중 기부터 과거응시나 토지소유를 금지해 오직 민속 예능만을 할 수 있게 한 특수 신분집단을 만들고 세습화, 조직화했다”고 말했 다. 즉 ‘광대’는 흔히 민속연희를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일반명 사가 아니라 신분적 특수명칭이었다는 것.

어떤 예술이든 그것을 성립, 발전시킨 사회·문화적 기반이 있기 마련인데, 우리 민속 예술은 관(官)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광 대집단이 중심이었던 것이다. 이들 광대집단은 악공이면서 광대 의 역할도 했다.

광대집단은 경기 이남의 경우 세습무(世襲巫) 집안의 남자들로 유지된 화랑이 집단이 대표적이다. 강신무(降神巫)위주였던 경기 이북의 경우는 달랐다. 이번에 광대출신 김영택(1920∼2000·황 해도 은율군)씨를 통해 확인된 ‘재인촌’은 고려시대부터 기생 의 아들들을 중심으로 성립된 광대집단이다. 지금도 경기북부 곳 곳엔 광대촌이나 재인촌이란 이름이 남아있다. 기록에 의하면 183 6년만해도 경기도에만 광대가 4만명에 달했다.

이들은 1894년 갑오경장에 의해 신분해방이 될때까지 그 공식 신 분을 유지했지만 이후에도 토지 등 재산이 없어 민속예능만을 하 며 살았다. 따라서 이들이 우리나라 민속 예능의 정통전승자였다 .

손 박사는 “현재 한국의 원로 국악인의 80∼90%는 세습무의 광 대집단 출신이라고 보면 된다”며 “이름만 대면 아는 원로 국악 인 대다수가 그 후손이다”고 말했다.

한편 ‘재담소리’는 광대들이 부른 소리갈래 중 대표적인 것이 었다. 이 소리가 바로 판소리의 원형이라는 것. 손 박사는 “재 담소리는 서사적 내용을 지녔고 연희적 요소도 강해 역시 서사적 내용을 극적 방식으로 공연하는 판소리로 바로 이어질 수 있었 다”고 말했다.

그는 12마당의 판소리들 중 오늘날 전승되지 않는 ‘배비장 타령 ’‘옹고집 타령’‘장끼 타령’등 이른바 유실된 7개(실전7가· 失傳7歌) 역시 골계(滑稽)적 줄거리를 담은 재담소리적 성격이 강한 것을 통해서도 이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판소리의 경우 지금까지는 손 박사의 은사이자 민속학자인 서대 석(서울대)교수의 ‘서사무가 기원설’이 유력했었다.

93년 대학원 시절 판소리에 빠져 서울대 판소리회를 만들었던 손 박사는 민속음악학자인 이보형씨에게 사사하다가 광대집단 존재 에 대한 단초를 잡고 10년 동안의 연구 끝에 그 결실을 맺게됐다 . 그는 “지난 10년간 나를 억누른 광대집단 연구에 대한 강박증 에서 이제 풀려날 것 같다”며 “앞으로 광대집단의 기예, 농악, 기악 연주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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