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이론

판소리 논문 - 참고1

土譚 2006. 3. 17. 19:19

유영대 / 전주우석대 교수, 고전문학

■ 머리말

판소리는 18세기 이래로 우리 민족의 가장 보존적인 문학예술 형태로 존재해 왔다. 특히 앞의 두 세기에는 민중들에게 가장 널리 애호되는 민중예술로서 판소리는 전승, 발전해 왔다. 20세기의 식민지 상태에서 전통시대의 민중예술은 거의 뿌리채 흔들려 전승의 맥을 끊기고 말았으며 판소리도 같은 궤적을 그리게 되었다. 게다가 전통예술에 대한 일제 당국의 집요한 조작에 의하여 우리 스스로가 그것을 거의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버린 적도 있었다.

해방이 되고 사태는 다소 진전되었다고 말한 수는 있지만, 그러나 판소리의 온당한 자리매김에는 거리가 있었다. 대체로 식민지를 체험한 나라에서는 자기 전통에 대한 맹신적 회귀의 바람이 불어와서 자국의 문화만이 유일무이하다는 식의 독단에 빠져 버리게 될 경우도 있다.

연구 문헌 목록에서도 알 수 있는 바이지만, 판소리에 관한 연구는 5백 편을 훨씬 넘어 6백편 가까이 되지 않을까 추정된다. 이렇게 많은 관심이 집중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전통예술인 판소리가 서사문학, 음악, 연극 등 다양한 복합체여서 여러 방면에서 관심이 유발된 때문일 것이다. 특히 판소리 연구의 주된 경향은 고전소설 연구의 일환으로 판소리계 소설을 택한 것이 많았으며, '판'의 예술인 판소리 자체의 총체적 연구가 소설 연구에서 독립적인 것으로 인식된 것은 7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전반적인 연구의 동향을 시기별로 나누어서 개관한 다음 주로 문학적 측면과 음악적 측면으로 나누어 연구사를 검토하고자 한다. 각 측면의 주된 연구 경향을 먼저 밝히고 이어서 시기별로 대표적인 논문을 간략하게 요약하여 소개하기로 한다.

시기별 동향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판소리 연구도 40년에 접어 들었다. 그동안 해가 거듭될수록 연구의 폭도 넓어지고 관심의 깊이도 깊어져 왔다. 편의상 10년 단위로 연구한 업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50년대 : 37편

60년대 : 102편

70년대 : 209편

80년대 : 170편

이 표를 보면 십년을 단위로 하여 연구의 양이 거의 배 정도가 증가해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만큼 관심의 폭이 넓어지고 논의가 다양화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면 이 표를 다시 5년을 단위로 하여 문학적 연구와 음악적 연구가 어떤 궤적을 그려 왔는지를 검토해보자.

연도

문학적 연구

음악적 연구

50년대

전반 15

후반 22



37

60년대

전반 34

후반 60

2

2

36

62

70년대

전반 63

후반 99

20

27

83

126

80년대

전반 135

135

170

427

85

512


이 표에서 볼 수 있듯이 60년대까지의 전반적인 연구는 문학적 연구이며, 그것도 판소리 자체의 연구보다는 판소리계 소설과 관련된 연구에 주력된 것이다. 음악적 연구는 실제로 70년대에 들어와서 비로소 시도된 것이다. 물론 여기서 문학적 연구와 음악적 연구를 구분 지었으나, 어떤 연구 업적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것도 있어서 약간의 넘나듬이 있을 수 있다 7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판소리가 현장 즉. 판의 예술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논의를 전개하게 되었다.

대체로 각 시대별 연구의 경향을 간략하게 조감해 보겠다.

① 1950년대 : 이병기·이명선·김삼불의 선구적으로 판소리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으며, 특히 김동욱·강한영의 자료 정리가 주축을 이룬다. 또한 판소리의 기원에 관심을 기울여 〔설화-타령-소설〕의 도식을 도출하였다.

② 1960년대 전반 : 김동욱·강한영·김기동·이혜구·정병욱에 의하여 연구가 확대된다. 특히 이본에 대한 집중적 고찰과 신재효에 대한 탐구, 배경 문제 등이 논의되었다. 이해구의 음악적 연구가 주목된다.

③ 1960년대 후반 : 이상택·황패강·인권환·조동일 등에 의하여 문제의식이 근원설화, 주제 , 현장성의 문제 등으로 확대, 심화된다. 판소리의 장르에 대한 논의가 제기되고 심화되었다.

④ 1970년대 전반 : 이보형·유기룡·한만영의 음악적 연구가 판소리의 온당한 면모를 보여주는데 기여한다. 판소리의 유파, 장단, 조 등의 문제를 제기한다. 조동일·인권한·김흥규에 의하여 판소리의 구조, 사후의식 등이 구명된다.

⑤ 1970년대 후반 : 이보형·유기룡·백대웅은 판소리 광대론, 고법, 조 등 심도있는 음악적 연구를 진행한다. 김흥규·서종문·김대행·서대석·설성경·김병국 등에 의하여 판소리 자체의 사회적 성격, 구조, 원리, 미의식, 전승 문법 등이 깊이 있게 탐구된다.

⑥ 1780년대 : 독자적이고 개별적 연구가 심화되는 기간. 윤용식·박진태·이헌흥 정병헌·정하영·임진택· 최내옥· 천이두 등이 제기한 문제는 본질적인 것이며, 여기에 이보형·백대웅의 음악적 연구도 깊이를 더하여 진행된다.

이상으로 간략히 각 시기를 개관하여 보았다. 대체로 60년대 초반까지 강한영·김동욱 두분의 자료발굴에서부터 해석까지의 작업이 토대가 되어 이후 연구의 방향설정에 디딤돌이 되었다.

문학적 연구의 자취

앞서 밝혔듯이 논의의 편의를 크게 문학적 연구의 음악적 연구로 나누고 다시 작은 토막으로 나누어 검토해 보기로 한다. 먼저 문학적 연구의 동향을 네 항목을 설정하여 연구사를 일별하기로 한다.

〔1〕판소리의 구조 문제

판소리의 짜임새에 관하여 논의를 전개한 것들이다. 조동일은 판소리와 판소리계 소설을 검토하면서 판소리 사설이 판소리 광대들에 의하여 구연되면서 전승되는 과정에서 형성되기도 하고 변모하는 점을 중시하고, 전승 과정에서 줄거리는 원래 대로 유지되면서 부분들이 변화하는 것에 주목하였다. 그리하여 고정체계면 / 비고정체계면의 도식을 제시하여 표면적 주제인 충이나 효는 고정체계면으로, 신분 상승의지 등의 이면적 주제는 비고정 체계면으로 표출된다고 보았다. <이 논의에 대한 비판은 임진택 (1981) 참조> 또 부분들은 전후의 인과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으로 발전한다는 '부분의 독자성' 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김흥규의 판소리 구조 연구도 주목에 값한다. 주로 서구의 문학 연구방법을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척도로 삼아서 우리 소설 작품을 분석하고, 그러면서 우리 문학작품이 서구 이론의 틀에 꼭 들어맞지 않을 때는 우리작품을 기형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결론지은 것이 이전시대 문학연구의 일반적 흐름이었다. 이러한 서구적 방법론에 대한 물신숭배적 태도를 비판하면서 그는 특히 우리 자료를 가지고 우리 방법을 모색하면서 판소리의 구조를 이론화 하였다.

그는 문학 작품의 해석에 보편적 척도가 되어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플롯'개념으로 판소리를 재단할 경우, '장황한 수사, 전체적 흐름에 비해 불필요하게 부연된 사설, 모순된 에피소드, 서술의 관점 및 태도의 혼란' 등 판소리의 일반적 특성은 통일성이 결여된 비정상적이고 기형적인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이런 분석 방법에 강한 반론을 제기하면서 그는 판소리에 그 나름의 양식적 원리가 있음을 해명하는 작업으로 판소리의 서사구조를 다루었다. 판소리는 플롯론자들의 이른바 '유기적 통일'이나 치밀하게 짜여진 '예상의 연쇄'와는 기본원리, 방법, 체험 양식이 다르다고 하면서, 오히려 어떤 상황이나 부분이 제공 또는 허용하는 의미, 정서를 절실하고 흥겹게 연출하려는 지향이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런 지향은 앞뒤의 조리가 맞지 않고, 모순, 갈등하는 둘 이상의 부분이 한 작품 안에 공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앞서 지적한 조동일의 '부분의 독자성'이나, 김대행의 '장면극대화의 원리' 와도 상응하는 개념이다. 특히 판소리의 연행구조를 정서적 긴장과 이완의 반복으로 보고, 창-아니리-창-아니리의 교체와 비장-골계-비장-골계의 구조가 서로 대응되면서 서사의 내용이 진행한다고 보았다.

김병국(1981)은 문어체 소설과 판소리 서사체의 변별적 특징을 문체론의 입장에서 해명하였다. 문장체 소설은 작가의 서술이 일정하게 진행되고 인물의 대사가 단조롭게 교체되는 것이 특징이며, 판소리 서사체는 작가 내지 서술자의 주체적 직접 진술과, 인물간의 극적 재현, 작자 및 작중인물의 이중 시점 등이 특징이라고 지적하였다. 김대행 (1976)은 판소리의 구조를 주로 수궁가를 텍스트로 하여 다시 구성, 형식, 수사, 관점의 네 측면으로 논의를 진행하였다. 구성의 구조에서는 사설이 대체로 부연되는 점에 착안하여 종합의 현상과 장면극대화의 현상이라고 개념 지웠다. 형식구조에서는 주로 창과 아니리, 장단의 변화 등 형식을 검토하였다. 수사구조에서는 주로 판소리의 문체를 검토하였다. 관점구조에서는 주제의 문제를 다루었다. 1978년의 논문에서는 어조 tone이론을 적용하여 심청전을 분석하면서, 경판 소설은 유교적인 엄숙한 어조의 서술로 인하여 극적 효과의 대부분을 잃어버린대 대하여, 완판에는 예정된 미래를 알려주는 예언자적 인물이 없기 때문에 극적 효과가 풍부하다고 하였다.

서대석(1979)은 구비서사시의 전승 문법 이론인 포뮬라Formula 개념을 판소리에 적용하여 논의를 전개하였다. 1981년의 연구에서는 판소리의 상투적 표현단위 cliche에 주목하여 어려운 한문, 고사성어, 시어 등의 문체와 어휘가 유식계급이나 특정개인으로 작가를 보려는 기존 주장은 재고되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2〕판소리의 사회의식

판소리 및 판소리에 소설은 조선후기 사회의 민중의식의 성장의 산물이며 그러므로 그 기저에는 강한 반봉건성이 있어 왔다. 김태준, 김삼불 이래로 판소리계 소설의 연구 경향은 이점을 추출해 내는 것이 주요한 흐름이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판소리계 소설은 전통이기도 하였다. 작품을 구체적 역사에서 이해하고, 작품 분석을 통하여 당대사회의 면모를 추적하려는 연구는 특히 실천적 지향성이 강한 방법이다.

임형택 (1969)은 흥부와 놀부가 같은 서민층에서의 양면성을 반영했다고 보았다. 놀부는 '상승된 경영형 서민 부농의 한 반영'인 반면, 흥부는 '소작의 기회마저 얻지 못하고 모든 생산 수단을 상실하여 품팔이꾼으로 전락된 영세 농민의 반영'이라고 하였다. 경영형 부농의 개념은 아직 우리 역사학계에서도 논쟁거리로 남아있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논의의 성과는 중요하다고 하겠다.

또 흥부전은 봉건 사회 질서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신흥서민 부농과 빈민층의 갈등을 보여주면서 놀부를 부정 흥부를 양심적이고 성실한 인물로 그려 당대의 사회적 모순을 반영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작품에 있어서 놀부의 몰락은 반사회, 반도덕적 이기주의의 패배로서 이는 사회 모순에 대한 서민층의 준열한 재판이며 결국 흥부전에는 근대 사회로 지향하는 역사의식의 약동이 나타나 있다고 분석하였다.

인권환(1973)은 판소리가 갖고있는 사회 비판의 수단을 풍자로 규정하고 토끼전에 나타난 풍자의 양상을 다음 세 가지로 분석하였다. 재배층의 무능, 알력과 모순된 정치 현실에 대한 풍자와 수령, 서리 계급들의 착취, 횡포 및 여기에서 오는 서민들의 경제적 파탄과 생활의 참상이 풍자적으로 나타나는 것, 당시 탐관오리들의 비행폭로와 그들에 대한 서민층의 역설적인 보복의식의 세 범주다. 특히 그는 수궁과 육지의 세계를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대립으로 파악하고, 지배층의 비정과 패악함을 구체적으로 풍자했다고 분석하였다. 토끼의 용궁행을 당시 농민의 이농현상의 한 반영으로 파악한 분석도 탁월한 것이다.

김홍규(1980)는 판소리의 사회적 기반이 일정한 층위에 있지 않았음을 밝히는 중요한 업적을 내었다. 기존의 연구에서 판소리에는 민중의 현실인식과 중세적 지향 등 상반되는 속성이 있어왔고, 그것을 해명하기 위하여 양면성(조동일)·불합리성(최진원)·모순(윤성근) 등의 개념이 도출되었다. 대체로 이러한 양면적 속성은 판소리가 적층문학이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이해하였다. 김흥규는 다시 이것을 과도적 복합성이라는 용어로 부르면서, 이러한 과도적 복합성은 판소리의 적층성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19세기 판소리 기반에 양반 좌상객이 개입하면서 이루어진 현상으로 파악하였다. 원래 판소리가 지닌 세속주의 평민적 현실인식의 토대는 이 양반의 판소리 연행, 전승에의 깊숙한 개입으로 인하여 일정하게 변질이 되었다는 것이다. 전승이 끊긴 7가는 전승 5가 처럼 충·효·열 등의 관념적 주제로 견인될 만한 가능성이 거의 없는 철저하게 세속적인 현실인식과, 우상의 파괴 '해학' 풍자만이 작품들이라고 하였다.

심정섭 (1974)외 연구는 판소리계 소설이 현실긍정의 기반위에서 주인공의 사회적 융화를 꾀하고 있다는, 지금까지의 판소리계 소설 연구의 방향에 반성의 시각을 요하는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이 논문은 대상이 된 텍스트가 판소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일정한 한계를 갖는다. 왜냐하면, 특히 심청전에서 그 대립의 양상이 확연히 드러나지만, 문장체 소설과 판소리계 소설은 비록 제목은 일치하지만 내용이나 문체, 주제, 새계관까지 현격한 차이가 있다. 심정섭은 판소리계 작품의 세계관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았으면서 텍스트는 문장체 소설이었다. 문장체 소설과 판소리계 소설의 거리에 대하여 유영대 (1985, 1987)가 심청전을 대상으로 분석하였다.

(3)판소리의 미의식

대체로 판소리의 미의식을 논의할 매 중요한 개념은 골계와 비장이다. 이중에서 골계는 해학과 풍자의 복합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조동일은 미학의 개념을 존재와 당위 사이의 갈등 양상으로 이해하여 당위를 중시하면 비장이 나오고 존재를 중시하면 골계가 된다고 하였다. 심청전을 분석하면서 판소리는 하나의 미의식으로 일관되지 알고 비장과 골계가 교차하며, 특히 판소리에 보이는 비장은 영웅의 비장이 아닌 평민의 비장으로서 살아가는 현실의 심각한 문제점을 부각시킨다고 보았다. 그렇지만 특히 그가 중요하게 인식한 미의식은 골제이다. 주인공의 비장한 상황 속에 빠져드는 것을 방지하고 비판적 안목을 갖게 해주는 장치로서 골계가 등장하는데, 골계에 의하여 독자(청중)는 부당하게 횡포를 부리는 무리를 비판하기도 하고 주인공의 어리석은 고민도 깨우치게 된다고 하였다.

김흥규(1980)는 판소리의 비장에 대하여 주목할만한 견해를 제시하였다. 그는 판소리의 비장 유형을 따지면서 이른바 평민적 비장이 판소리의 주된 미의식임을 밝혔다. 영웅소설들이 대개 영웅 주인공의 비장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판소리는 예를 들어 적벽가의 경우처럼 병졸들의 일상적 비장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비극=귀족장르, 희극=서민장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데 대하여 판소리는 서민장르이면서 비장한 내용이 많은 점을 지적한 것이다.

천이두(1985)의 '한과 판소리'는 특히 한이라는 포괄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판소리의 미학적 특성을 규명한 중요한 논의이다. 그는 한의 예술로서의 판소리가 그 가창자에 의하여 하나의 예술로 성취될 때까지의 과정을 시김새와 그늘이라는 용어를 통해 살핀 다음, 판소리 서사 구조의 절정을 이루는 부문에서는 계면조의 처절한 가락으로 연행되는 점에 주목하여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한의 미학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 부정적 정서의 표상으로서의 한이 오히려 끊임없이 긍정적인 삶의 지평을 열어가게 된다고 보았다. 정양(1986)은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쑥대머리'를 정밀하게 분석하였다.

이국자(1981, 1982, 1983, 1984)의 논문은 부분적으로는 흥미로운 관찰이라고 할 수 있으나, 판소리에 관한 논문이라기 보다는 수용미학에 번역·이식의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논문들을 보면 판소리에 대한 객관적 구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판소리 감상에 대한 자족적 체계의 강요에 있다. 연구는 구체적 텍스트에서의 보편적 가치 추구이다.

(4) 판소리의 기원 및 사적 전개

판소리의 기원에 관해서는 대체로 무당의 굿으로 논의의 초점이 모아진다. 문학쪽이나 음악쪽에서 대체로 일치하는 견해라고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기원에 관한 연구는 대체로 간단히 장단을 비교하는 수준에 머물거나 혹은 가설적인 굿(설성경은 '춘향굿'이라고 하였는데)을 상정하는데 그쳤을 뿐, 설계로 판소리 광대들의 가계도를 통한 구체적 검증은 없는 형편이라고 하겠다. 판소리의 사적 전개에 대하여서도 대체로 세 시기로 구분하여 논의를 전개하였다고 보아진다.

김동욱(1968)은 형성기, 전성기, 쇠잔기로 나누어 논의를 전개하였다. 형성기는 18세기로 만화본 춘향가가 있었고, 정착·유랑광대가 있었다. 또 초기 판소리는 판놀음 속에 끼어서 존재한 것으로 보았다. 제 2기인 전성기는 정조 때부터 고종말로 잡아서 논의를 전개하였다. 이때는 열두마당이 형성되었으며, 명창이 배출되었고, 판소리계 방각본이 정착되었고, 이어서 신재효의 여섯마당의 정착까지를 포함한다. 다음으로 쇠잔가를 들었는데, 이시기의 특징으로는 표면상으로 많은 창가가 나와 흥행은 되었으나, 창극화하는 등 판소리와 시대적 사명이 다한 시기라고 하였다.

김흥규 (1980)도 세 시기로 나누었으나 신재효를 변모기에 넣은 점이 다르다. 대체로 17세기 말까지로 추정되는 판소리의 초기적 형성기에는 일반평민들이 그 사회적 기반이었던 것으로 보았다. 판소리가 보다 발전된 창악으로 정립되는 18세기 전성기에 들어서면서 양반층이 점점 이에 흥미를 가졌고, 판소리의 청중으로서 비중이 증대하기 시작했으며 평민적 기반도 동시에 유지되었다. 변모기인 19세기에는 명창들의 계보가 확립되면서 판소리가 매우 세련된 창악으로 발전하였고, 양반충의 후원을 바탕으로 하여 질적 변화를 이룩하였다. 이 단계에 이르러서 판소리는 양반층을 보다 중요한 기반으로 삼게 되었고, 이에 따라서 기존 판소리의 일부가 전승이 끊기기도 하고 개작되기도 한 것으로 보았다.

임진택 (1981)은 5단계로 나누어서 논의를 전개하였다. 생성기(판소리와 관련된 어떤 시기로부터 18세기초까지) - 성장기(19세기초까지) - 굴절기(19세기 말엽까지) - 쇠잔기(일제시대) - 보존기(현재)의 단계가 그것이다. 그렇지만 임진백의 시기 구분은 김흥규의 그것과 거의 비슷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5〕판소리의 장르문제

판소리의 장르에 대하여 크게 네가지 입장이 공존하고 있다. 서사장르로 보는 견해, 음악적 양식으로보는 견해, 연극으로 보는 견해, 현장론적 예술로 보는 견해의 네 가지이다. 이 네 입장은 판소리의 어느 한면 만을 강조하여 지적하는 것으로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보완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특히 장르는 문학의 갈래론이므로 총체 예술인 판소리를 특히 사설만을 대상으로 분류하는 한계성을 지닌다.

서사장르에 속한다는 논의가 주된 흐름이었으며, 김삼불의 언급이 대표적이다. 그는 '판소리는 주된 것이 창조(唱調)였고, 발림은 종속적인 것이니 아직 창악이지 창극은 아니며, 그 사(詞)는 서사시 계열에 속할지니 희곡내열에서는 멀다' 라고 하여 서사장르의 견해를 밝혔다.

조동일(1969)은 장르를 장르종과 장르류의 개념으로 구분 지은 다음 판소리가 서사장르류 임을 논증하였다. 이후에 판소리의 장르는 대체로 서사쪽으로 기울어서 김흥규(1975)도 '구비문학이며 창과 사의 결합에 근거한 독특한 서사양식'임을 밝혔다.

연극적 특성에 관련시킨 연구로는 이병기를 꼽을 수 있다. 이병기는 극가라는 개념을 만들어 판소리를 포함시켰다. 특히 극가는 내용이 극적 요소가 많고, 체제가 소설적이기 보다는 희곡적이고, 문체가 산문체가 아니고 시가체인 것을 말한다면서 판소리는 창조(음악적 성격)와 창사(사설)로 이루어진 극가라고 하였다. 이두현(1966)은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하여 논의를 전개하였으며 김우옥도 판소리학회의 연구발표회(1985)에서 이같은 입장을 확고히 하였다.

다음은 이른바 현장론적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판소리가 연행되는 판의 의미와 전승맥락을 존중하자는 입장이다. 서종문(1980)은 판소리가 고정화되어 완결된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현장에 따라 달라지는 개방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사설과 창, 창자와 고수, 감상자의 청중적 기능과 관중적 기능 사이에 성립되는 여러 영향 관계와 통합 관계를 살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성현경도 판소리학회의 연구발표회(1985)에서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음악적 연구의 자취

〔1〕 판소리 광대론

광대론은 말하자면 구비문학 작가론이나 시인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판소리 연구에 가장 필요한 부분이 바로 이 광대론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기실은 이 부분이 거의 이루어져 있지 않다. 문학 작품은 작품론과 마찬가지 비중으로 작가론이 다루어지는데, 판소리의 광대론이 소홀히 다루어져 왔다는 것은 그간의 어떤 종류의 편견에 기인한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광대론에 관한 한 정노식의 조선창극사 이후 그것에 상응할만한 업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다. 개별적인 광대론이 참으로 필요하다고 하겠다. 송만갑론이나 정정렬론, 이화중선론, 박동진론 등 개별적 광대론이 특히 필요하다.

유기룡(1972, 1974)의 일련의 작업은 특히 주목을 요한다. 판소리 8명창과 그들 더늠의 전 승자들을 밝힌 글이 특히 흥미롭다. 권삼득의 덜렁제나 송흥록의 호걸제, 모홍갑 더늠, 신만엽 등의 더늠과 바디에 과한 개괄적인 글이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이러한 논문은 녹음테이프를 자료로 붙여야할 필요성을 느낀다. 이 점은 모든 음악적 연구에 해당되는 요청이기도 하다.

박황(1974)은 대체로 조선창극사를 토대로 하여 명창의 간략한 전기를 기술하고, 계보도를 작성하였다. 그의 창극사 연구도 창극 관계 자료를 모아둔 것이기는 하지만 자료로서 의의가 있다.

이보형(1977)의 글은 임방울과 김연수의 비교 연구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의 소리의 특징에서부터 갈등 양상까지를 간략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나 기록 자료가 없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기억속에 있는 분들이 많은 터이므로 더 폭넓게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점에 관하여 천이두(1986)의 '명창 임방울'은 아주 시사적인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임방울의 일생을 본격적 전기물로 구성한 것은 아니다. 스케치풍으로 판소리와 광대인 임방울의 몇몇 단편을 그리고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판소리를 사랑하는 그의 입장이라든지, 판소리에 얽힌 한 등을 곰삭은 목소리로 보여주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판소리가 용해되어서 깊은 애정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2〕판소리 음악론

이혜구(1957)는 판소리를 '2시간 이상 걸려 춘향전, 심청전 같은 긴 이야기를 1인이 북장단에 맞추어서 발림을 섞어 가면 소리와 아니리로 서술하여 사람을 울리고 웃기고'하는 것으로 보고, '듣는 사람을 울리고 웃는 판소리를 비롯한 속악은 정악과 달라서 장단고저를 무궁하게 변화시켜 감정을 자유분방하게 표현한다'고 하였다.

박헌봉(1966)의 '창악대강'은 판소리의 음악성에 관하여 일찍이 주목한 중요한 업적이다. 고는 이 책에서 판소리의 음악적 특성을 정리하고 5가의 사설을 정리였다. 5가를 정리함에 있어서 대체로 기존의 주요하게 생각되는 더늠을 참고하였으나, 그러한 작업의 의의는 그다지 크지 않을 듯하다. 그는 판소리의 특징을 말하면서 '창악은 국악 중에서도 독특한 성악으로 탁월한 기교와 운치를 지닌 민속음악'이라고 하였다.

김기수(1970-76)는 판소리 다섯 마당을 모두 오선지로 채보하여 판소리의 선율의 흐름을 볼 수 있게 만들었다. 판소리의 악보를 필요로 하는 연구는 대체로의 자료를 인용하게 되었다.

이보형은 판소리를 '서사적인 내용을 담은 극적인 악곡으로'서사무가나 가사보다 표출력이 훨씬 강한 예술음악으로 이해하였다. 그는 판소리의 음악에 대하여 가장 구체적이고 탄탄하며 광범한 작업을 수행하였다. 그는 무가와 판소리의 엇모리 가락을 비교하여 판소리의 무가 기원설을 실증적으로 구명하였으며(1969), 주요 명창의 더늠을 정확하고 상세히 조사하였으며(1973), 판소리 선율의 원천을 우리 내부에서 찾으려고 현지 조사 및 채록의 구체적 수법을 이용하여 검증하였다. 또한 판소리의 극적 상황에 따르는 판소리의 장단과 조의 변화에 주목하여 '판소리의 장단 및 조는 사설의 인물, 정경, 정조, 작위, 어조 등 여러가지 극적 상황에 따라 느리고 빠른 장단에 기쁘고 슬픈 조를 골라서 구성한다'고 결론지었다. 또한 이면에 대한 논의도 본격적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였다(1975).

백대웅(1979)도 판소리의 이해를 위하여 '소리'로 보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하면서, 판소리 음악의 요소를 '성음', '길', '장단'으로 구분하여 제시하고 분석하였다. 또한 판소리 선율의 시대적 변천을 고찰하면서 계면 위주의 전승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냈다(1982). '이면의 이면'이라는 부제가 붙은 1985년의 논문에서 그는 '판소리의 눈'이라는 개념을 설정하여 서사적 맥락과는 달리 음악적으로도 가장 긴장되는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부분을 그 영역으로 설정하였다.

〔3〕판소리 전승론

판소리 전승론은 유파의 계보나 제의 문제를 다룬 것이다. 이 부분도 대체로 명확한 도식은 없는 셈이다. 이보형 (1980)의 제에 관한 연구가 본격적인 유파에 과한 연구이다. 그는 판소리의 제(흔히 법제나 소리제)에도 더늠을 가리키거나 바다를 뜻하거나 조를 의미하는 경우와 유파를 가르는 개념 등 네 가지 용례가 있음을 밝히면서 논의를 진행하였다. 이어서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 등의 범위를 설정하는 그 제의 특징을 상세히 분석하였다.

실제로 판소리를 전승하는 사람들이나 판소리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이 전승의 계보에 대하여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고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학문적 수준으로 확대하기 위하여 엄밀하고 객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4〕판소리의 장단과 선율

장단과 선율에 대한 연구는 주로 이보형, 한만영(1972), 백대웅, 유기룡 등에 의하여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유기룡과 이보형의 판소리 고법에 대한 연구는, 특히 이보형의 그것은 아주 상세하며 흥미로운 것이다. 장단 연구와 추임새 연구를 겸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맺고 푸는 것의 해석도 객관성이 있다고 하겠다. 기 - 경 - 결 - 해의 장단 자체에 대한 이론은 어느 의미에서는 현학적인 것이라고 하겠으나, 어떻든 판소리 장단의 실상을 잘 보여주는 개념이라고 본다.

맺음말

이 글은 판소리의 연구현황을 살펴보고 주요한 연구업적을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부분적 검토에서도 밝혔지만 판소리 연구의 수준이 어느 정도 계도에 올랐다고는 할 수 있지만, 정작 '판의 예술'의 차원까지는 아직도 미흡한 수준이라고 생각된다.

대체로 60년대까지는 판소리 연구가 아니고 판소리계 소설의 연구였었다. 그러다가 판소리 자체의 연구로, 그리고 판소리의 음악적 연구로 영역이 확대되면서 비로소 판소리의 온당한 자리매김도 가능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현장성이 강조되는 판의 예술로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이 일반화된 것 같다.

판소리의 연구 현황을 검토하며서 결론으로 남는 생각은 그것이 지금까지의 방대한 연구 업적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더 많은 논의거리와 논쟁거리를 남겨두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