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 합니다]무형문화재 지정 현황 2 무형문화재 지정현황 (41호∼80호) 문화재명 지정번호 지정연도 가사 (歌詞) 중요무형문화재 41호 (서울시) 1971.01.08 악기장 (樂器匠) 중요무형문화재 42호 (전국일원) 1971.02.24 수영야류 (水營野遊) 중요무형문화재 43호 (부산시) 1971.02.24 한장군놀이 (韓將軍놀이) 중요무형문화재 44호 (경북) 1971.03.16 대금산.. 국악이론 2006.04.06
[알아봅시다]무형문화재 지정 현황 1 무형문화재 지정현황 (1호∼40호) 문화재명 지정번호 지정연도 종묘제례악 (宗廟祭禮樂) 중요무형문화재 1호 (서울시) 1964.12.07 양주별산대놀이 (楊州別山臺놀이) 중요무형문화재 2호 (경기도) 1964.12.07 남사당놀이 (男寺黨놀이) 중요무형문화재 3호 (서울시) 1964.12.07 갓일 중요무형문화재 4호 (전국일원) 1.. 국악이론 2006.04.06
[알아봅시다]판소리 목 구성 바로 알기 "; str+=""; str+=""; document.write(str); ♠ 통성 : 뱃속에서 바로 위로 뽑는 소리 ♠ 천성 : 쇠망치와 같이 껄껄하게 나오는 소리 ♠ 수리성 : 쉰 목소리와 같이 껄껄하게 나는 소리 ♠ 세성 : 아주 가늘 게 미약하고도 분명하게 나는 소리 ♠ 항성 : 목에서 구부러져 나오는 소리 ♠ 비성 : 코에서 울려 나오는 소.. 국악이론 2006.03.30
[알아봅시다] 한국의 춤 승무는 흔히 중춤이라고도 하지만 불교의식(佛敎儀式)에서 승려가 추는 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민간연향(民間宴享)에서 무원(舞員)이 흰 장삼을 입고 흰 한삼을 끼고 붉은 띠 모양의 가사를 매고 흰 고깔을 쓰고 추는 춤을 가리킨다. 재(齋)와 같은 큰 불교의식에는 승려들이 법고춤(法鼓춤), 바라.. 국악이론 2006.03.26
고법과 추임새 논문-참고3 판소리 북가락 전개와 추임새에 관한 연구 김 경 동 Ⅰ. 서론 1.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판소리는 조선 중기 이후에 정착된 우리나라 고유의 극(劇)음악이다. 노래하는 한 사람이 북을 치는 고수(鼓手)의 장단(長短)에 맞추어 극적인 또는, 서사적인 내용으로 된 긴사설을 소리, 아니리, 발림으로 엮어 가.. 국악이론 2006.03.17
판소리 논문-참고2 [판소리이해] 판소리의 이해 이 원 수 1. '판소리'란 말의 뜻 판소리는 조선후기 서민문화의 발흥과 함께 생성, 발전해 온 전통적 연행예술(演行藝術)로서, 전문적 소리꾼인 광대가 고수의 북장단에 맞춰 말과 노래로 이야기를 연창하는 구비적 현장예술이다. '판소리'는 '판'과 '소리'의 합성어인데, '판'의 뜻을 어떻.. 국악이론 2006.03.17
판소리 논문 - 참고1 유영대 / 전주우석대 교수, 고전문학 ■ 머리말 판소리는 18세기 이래로 우리 민족의 가장 보존적인 문학예술 형태로 존재해 왔다. 특히 앞의 두 세기에는 민중들에게 가장 널리 애호되는 민중예술로서 판소리는 전승, 발전해 왔다. 20세기의 식민지 상태에서 전통시대의 민중예술은 거의 뿌리채 흔들.. 국악이론 2006.03.17
판소리 뿌리는 세습광대 "판소리 뿌리는 세습 광대" (::서울대 한국문화硏 손태도 박사 실증규명::) 지난 8일 유네스코(UNESCO)로부터 세계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된 판소리 등 수준 높은 우리 전통예술은 어떻게 발전된 형식으로 지금까지 유지해 올 수 있었을까. 이같은 궁금증을 풀게됐다. 고려 중기부터 조선말까지 세습적 ‘.. 국악이론 2006.03.17
세계 무형문화 걸작 선정 기념 음반 나와 [판소리] 20대 명창의 소리를 들어라! [한겨레]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걸작’에 판소리 선정… 소리의 부활을 예고하는 ‘판소리의 젊은 명창들’ 우리나라 판소리(중요무형문화재 5호)가 경사를 맞았다. 11월7일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가 판소리를 ‘인류 구전ㆍ무.. 국악이론 2006.03.17
득음과판소리 득음과판소리 송흥록은 조선후기 판소리 명창으로 동편제의 시조이다. 그는 득음(得音)을 위해 지리산에서 피나는 소리공부를 했다. 폭포소리를 이겨내는 공부였다. 목에서 피를 토하며 독공에 매진, 3년 만에 그의 소리는 폭포소리를 뚫을 수 있었다. 그는 귀곡성을 내기 위해 공동묘지에서 몇 달씩 .. 국악이론 2006.03.17